측후(測候)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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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측후 |
한글표제 | 측후 |
한자표제 | 測候 |
상위어 | 천문학 |
관련어 | 교식(交食), 치력(治曆) |
분야 | 문화/과학/천문 |
유형 | 개념용어 |
집필자 | 김일권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측후(測候) |
혜성(彗星)과 객성(客星), 치우기(蚩尤旗) 등 성변(星變)의 관측을 위주로 하는 관상감의 주요 업무.
개설
서운관(書雲觀) 내지 관상감에서 행하는 주요 업무로는 치력(治曆)과 측후(測候)가 있다. 측후는 주로 혜성, 패성(孛星), 치우기 등 각종 성변과 재변(災變)의 관측과 해석을 담당하는 일을 이른다. 『서운관지』 「측후」 편에는 『진서』「천문지」에서 처음으로 경성(景星)·함예(含譽) 등은 서성(瑞星)으로, 혜성·패성·국황(國皇) 등은 요성(妖星)으로 구분하였음을 언급하고서 이런 성변의 기록을 측후로 수록하였다. 객성이라 불리는 주백(周伯)·노자(老子) 등을 서성으로 간주하면 나라가 크게 창성할 것이라 하고, 이들을 객성의 무리로 분류하면 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하는데 과연 이런 설을 본받을 수 있겠는가 반문하고서, 사마천이 『사기』 「천관서」에서 이들을 다시는 구분하지 않았던 것은 다 진실로 까닭이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서운관지』 서문에서 ‘서운관은 천문과 수시(授時)를 담당하는 관서’라 하였고, 『서운관지』 「관직」 편에서 서운관은 천문, 지리, 역수(曆數), 점주(占籌), 측후, 각루(刻漏) 등의 일을 담당한다고 정의하였다. 이렇게 측후는 서운관 내지 관상감이 행하는 매우 중요한 직무였다.
『서운관지』 권3에는 관상감 소속 삼학(三學)의 직무를 세밀히 기록하였는데, 천문학 분과는 치력·측후·교식(交食)으로 분장하여 서술하였고, 지리학은 감여(堪輿)로, 명과학은 선택(選擇)으로 서술하였다.
『서운관지』 「측후」 편에 수록된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이 천체의 성변 관측 업무를 측후라 칭하였다. 그 성변의 관측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였는데, “객성·혜성·패성·치우기 등의 성변이 있으면, 천문학의 당상관 이하 모든 관원이 모여 질정한 후 구임(久任)이 영사(領事)와 제조(提調)에게 나아가 아뢴다. 영사와 제조는 임금께 아뢰어, 문신측후관(文臣測候官) 두세 명을 따로 임명하고, 이들은 번을 나누어 교대로 근무한다. 천문학겸교수(天文學兼敎授)와 별측후관(別測候官)도 각각 윤번으로 근무하며, 별의 모양을 상세히 살펴 보이는 대로 왕에게 보고한다. 성변이 사라지려 할 때에 처음처럼 다시 모여 소멸하는 것을 확실히 본 후에 초기(草記)를 올려 측후 활동을 마감하기를 청한다.”고 하였다. 별측후관은 혜성과 객성 등 특별한 성변이 발생하였을 때 측후를 별도로 담당하는 관원을 일컬으며, 상번(上番)과 하번(下番)으로 나누고서, 상번은 당상관이, 하번은 정(正)과 참상관(參上官)이 맡도록 하였다.
변천
측후의 기록 방식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였다. 왕에게 바치는 보고서에 성변이 발생한 시각을 “모월 모일 간지 초혼(初昏)”, “밤 몇 경(更)에 별이 어느 수(宿) 몇 도(度) 내의 무슨 별 위에서 보였고, 모양이 무슨 별과 같았다.”, “크기가 무슨 별과 같았고, 색은 어떠했고, 거극도수(距極度數)는 얼마였고, 몇 경에 서쪽으로 사라졌다.” 등등으로 기록하라는 지침을 수록하였다.
기록 형식도 매뉴얼로 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혜성이 나타났을 때 먼저 “색은 어떻다.”라고 적고, 그 아래에 “한 쪽으로 치우친 꼬리가 있어 혜성과 유사하다.”라고 적고, 꼬리의 자취가 점점 길어지면 “혜성이 어느 수 몇 도 내에 보였고, 꼬리의 길이가 몇 척 남짓이다.” 등으로 기록한다고 하였다. 이상의 설명은 혜성 관측의 경우를 예시한 것이다.
그런데 별이 위치를 옮겨 지평선 가까이로 가게 되면 평지에 있는 관상감에서는 살필 수가 없으므로, 관상감 관원 중 실력 있는 자 2명을 뽑아 목멱산(木覓山)이나 마니산(摩尼山)에 올라가서 별의 모양과 꼬리의 자취를 확인하게 하였다.
이렇게 발생한 성변에 대해, 매일 거극도수와 별의 모양 및 색, 꼬리의 자취를 측후해서 왕에게 보고하며, 그 계문 단자(單子)의 끝에는 그날 측후에 참여한 관원들의 관직과 성명을 나열한다. 이때 순서는 맨 앞에 문신측후관을 쓰고, 다음에 겸교수를 쓰고, 그다음에 별입직(別入直) 관원들을 쓰되, 별입직 관원 중 당상관은 겸교수의 위에 오게 하였다. 『서운관지』 「식례(式例)」 편에는 계목지(啓目紙)를 세 번 접어서 첩(貼)으로 만든 측후 단자의 서식을 언급하였다.
이 측후 단자는 별측후관 중의 하번이 승정원과 시강원에 바치고, 분발(分撥)은 삼상공(三相公)과 두 제조, 측후관, 천문학의 당상과 여러 임관에게 각각 바치게 하였다. 또 측후소에서 쓰이는 종이, 땔나무와 숯, 기름과 등불, 깔개[鋪陳], 기타 잡물은 해당 각 관서들에 명해서 바치게 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 『서운관지(書雲觀志)』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