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天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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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天體)에 관한 모든 현상 또는 이에 관한 학문.

개설

조선시대는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서운관(書雲觀)을 두고 천체 및 기상 관측과 관측 기구의 제작, 시설의 정비, 관측 제도를 완비하는 데 주력하였다. 특히 세종대에는 해시계의 일종인 앙부일구와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었고, 자주적 역법의 확립을 위하여 역서인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을 간행하여 조선의 역법을 완전히 정리하는 등 천문(天文) 분야에 큰 발전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중국 한나라 때 유학자인 동중서(董仲舒)가 하늘과 인간이 서로 교감한다는 이른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내세운 이래로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군주는 ‘하늘의 천문 변화를 단서로 삼아 올바른 정치 교화를 펼쳐야 하는 존재’로 믿어졌다. 하늘의 현상은 독립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늘이 인간 사회에 내리는 메시지로 읽혀졌고, 특히 백성을 다스리는 제왕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하늘이 징험하는 것으로 믿었다. 훌륭한 성군이 나올 때는 하늘이 온갖 상서로운 일로 화답하고, 제왕이 정치를 잘못했을 때는 재이(災異) 현상을 내려 인간 사회를 견책한다는 이른바 ‘천인감응설’은 유교 정치와 결합하여 왕도(王道)의 요체로 받아들여졌다.

천문이 가진 정치적 중요성으로 일찍부터 천문관서가 발달하였는데, 고려와 조선시대 천문관서인 서운관과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천문·지리·역수(曆數)·점주(占籌)·측후(測候)·각루(刻漏) 등의 일을 관장하였다. 이때의 ‘천문’은 오늘날의 천문학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드리워진 무늬’로서의 천문, 즉 천상(天象)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서운관의 ‘서운(書雲)’이라는 명칭은 『좌전(左傳)』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2분(춘분·추분)과 2지(하지·동지)에 반드시 운물(雲物)을 기록하게 하였다[分至啓閉 必書雲物].”는 기록에서 따온 것이었다. 서운이라는 말이 ‘운물을 기록한다’라고 할 때, 여기서 운물은 구름으로 대표되는 일체의 기(氣)의 작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천문·기상 현상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었다. 천상이 ‘하늘의 형상’이라면, 천문은 ‘하늘에 드리워진 무늬’로서 양자는 모두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체의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월오행성의 운행이나 일식·월식, 혜성의 출현 등이 천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번개와 천둥, 바람·비·눈·우박·서리·이슬, 무지개 등도 역시 천상이자 천문이었다.

고려와 조선시대 천문학은 천문역산학(天文曆算學)이었다. 천문역산학은 제왕의 학문으로 간주되었다. 유교·주자학에서는 제왕의 첫 번째 임무를 관상수시(觀象授時), 즉 하늘의 형상을 관찰하여 시간을 부여해주는 것으로 규정하여 천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수명개제(受命改制)’, 즉 천명을 받아 제도를 개혁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새로운 왕조가 수립되었을 때에는 천명(天命)의 수수(收受) 여부를 대내외에 표방할 수 있는 천문학의 정비를 우선 과제로 삼았다. 따라서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삼는 역대 왕조의 과학 정책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역시 건국의 정당성을 정치사상적으로 뒷받침하는 수단으로서의 천문학의 정비와 천문역법의 발달이었다. 조선왕조의 경우 태조대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각석(刻石), 세종대 간의대(簡儀臺)의 설립과 『칠정산(七政算)』이라는 자주적 천문역법의 개발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천문이 가장 발전했던 시기라 할 수 있는 세종대의 천문학 발전의 과정을 보면 이러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1432년(세종 14)에 세종은 천문관들이 계산한 일식, 월식, 절기 등이 중국에서 계산한 것과 일치하자 이를 커다란 성공으로 여겼다. 다음 과정으로 천문 기구의 제작과 이를 통한 관측이 시행되었는데, 이는 1432년부터 1433년(세종 15)까지 진행되었다. 한양의 위도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당시 가장 효율적인 관측 기구인 간의(簡儀)를 제각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경회루를 빙 둘러서 여러 가지 다양한 천문 기구들이 설치되었고, 40척이나 되는 해 그림자 측정용 동표(同表)가 간의대의 서쪽에 설치되었다. 세종대 천문학 발전의 마지막 단계는 한양의 위도에 맞춘 시각법의 적용이었는데, 이는 1433년에 완성되었다. 이미 측정되고 확인된 한양의 위도를 기준으로 장영실은 물시계, 즉 자격루를 1433년 9월에 제작하였고, 이것은 다음 해부터 정식으로 조선 시각의 표준으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정치사에서 시간의 독점적 측정과 보시를 수행하는 ‘관상’과 ‘수시’는 통치자가 이상적인 정치 활동을 함에 있어 가장 앞서서 추진해야 할 사안이었다. 관상과 수시를 잘하는 것이 제왕 된 자의 권한이자 책무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사정을 동아시아의 정신적 관념과 지식 세계를 지배했던 『서경(書經)』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서경』에 등장하는 요임금과 순임금은 후대 모든 제왕들이 모범으로 삼았던 성군이었다. 그러한 모범적인 두 성군이 왕위에 올라 가장 앞서서 행한 일이 바로 ‘관상’과 ‘수시’였던 것이다.

『서경』의 맨 앞부분인 「요전(堯典)」에, 요임금이 희화(羲和)에게 넓은 하늘을 삼가 따르고, 해와 달과 별의 역상(曆象)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절후를 알려주게 하셨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희화는 천문 관측과 시간 측정을 담당하던 관원이며, 역상은 천체 현상을 관찰해서 역법(曆法)을 정립함을 말한다.

유교 문화권에서 최고로 추앙받는 성군인 요임금이 제왕에 올라 무엇보다도 제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무로 천문 부서의 설치와 역법의 정비, 그리고 시간의 측정과 보시를 제시한 것이다. 실제로 요는 관상과 수시에 역점을 두어 결국 1년의 날을 366일로 확정하고, 때에 따라 윤달을 삽입하는 역법을 정립함으로써 모든 정치 활동의 토대를 든든히 하였다고 『서경』은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요임금을 이어 왕통을 이어 받은 순임금도 마찬가지였다. 『서경』「순전(舜典)」에는 “선기옥형(璇璣玉衡)을 창제하사 일월오성의 천체 운행을 가지런히 하였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 ‘선기옥형’이란 ‘혼천의(渾天儀)’의 다른 이름으로 고대의 이상적인 천문 관측 기구이다. 순임금은 요임금을 이어서 천문 관측 기구를 창제하시고, 그로써 천체의 운행을 명확하게 관찰하게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요·순 두 성군이 관상과 수시를 제왕으로서 마땅히 앞서서 해야 할 책무로 규정했기 때문에 이후 특히 조선시대 왕들은 관상과 수시를 천문학적인 활동일 뿐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사안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변천 및 현황

조선전기 천문을 맡은 관청은 서운관이었다. 서운관은 천문 및 기상 관측과 달력 제작, 그리고 시간을 알려주는 일을 맡은 관청으로 하늘에서 벌어지는 각종 천체 현상과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규정된 재이 등을 관측하였다.

요컨대 전통적으로 천문관서는 시간을 파악하고 역법을 작성하는 일과 함께 점성술과 관련된 각종 천체 현상을 관측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그 이유는 이와 같은 현상이 국가나 지배자의 운명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전통적인 천인감응설과 재이설(災異說)의 영향 때문이며, 그 배후에는 유교적 정치론으로서의 천명사상(天命思想)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 천문학의 내용은 고려중기에 정리된 『삼국사기(三國史記)』, 조선초기에 편찬된 『고려사』, 그리고 조선후기의 관찬 자료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서운관지(書雲觀志)』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18세기 초에 고려왕조 475년간의 천문 기록을 종합 정리하여 최천벽(崔天璧)이 1708년에 편찬한 『천동상위고(天東象緯考)』에는 “고대 성왕들의 천문 관측은 ‘하늘을 공경하고 세상을 다스리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자신이 이 책을 편찬하는 이유도 국왕의 수성격치(修省格致)에 도움을 주고자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전통 사회 천문학의 유구한 전통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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