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시각(晝夜時刻)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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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주야시각 |
한글표제 | 주야시각 |
한자표제 | 晝夜時刻 |
상위어 | 시각제도 |
하위어 | 주각(晝刻), 야각(夜刻) |
동의어 | 주야각(晝夜刻), 주야분(晝夜分) |
관련어 | 간의(簡儀), 김영(金泳), 앙부일구(仰釜日晷),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소간의(小簡儀), 신혼분(晨昏分), 혼명분(昏明分) |
분야 | 문화/과학/천문 |
유형 | 개념용어 |
집필자 | 안상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주야시각(晝夜時刻)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21년 8월 2일 |
해 뜨는 시각과 해 지는 시각 사이의 낮의 길이와 그 나머지인 밤의 길이.
개설
해 뜨는 시각부터 해 지는 시각까지를 낮이라고 정의하였으며, 해 지는 시각부터 해 뜨는 시각까지를 밤으로 정의하였다. 일 년 동안 태양의 적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밤과 낮의 길이가 변한다. 그래서 이십사절기가 드는 날의 밤과 낮의 길이를 계산하여 책력에 수록하였다. 이것을 주야시각(晝夜時刻) 또는 주야각(晝夜刻)이라고 한다.
내용 및 특징
조선 세종 때 완성된 간의(簡儀), 앙부일구(仰釜日晷),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소간의(小簡儀) 등으로 낮의 길이를 측정하였다. 밤의 길이는 하루의 길이에서 낮의 길이를 빼면 구할 수 있었다.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에는 주야각을 계산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조선시대에 운영되던 물시계인 자격루는 최종 물받이 항아리 즉 수수호가 두 개 있었다. 이 수수호는 과거에는 니덤 등의 주장에 따라 밤과 낮에 하나씩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각각 주루(晝漏)와 야루(夜漏)로 불러왔으나, 최근 남문현 등의 연구에 의해 하루에 항아리 하나씩을 사용하고 매일 정오를 해시계로 측정하여 그때마다 항아리를 교체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날마다 자격루의 눈금을 조정하여 오차를 상쇄할 수 있었다.
일 년 동안 주야각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절기별로 물시계 잣대의 눈금을 다르게 새겨두고 교환해가면서 사용하였다. 이러한 잣대의 눈금 변화를 미리 계산해놓은 책을 『누주통의(漏籌通義)』라고 한다.
조선시대 내내 밤 시간은 경점법(更點法)으로 규정하였다. 우선 해 질 때부터 2.5각(刻) 지날 때를 혼각(昏刻)이라고 하고 그 사이의 시간을 혼분(昏分)이라고 하며, 해 지기 전 2.5각을 효각(曉刻)이라 하고 그 사이의 시간을 신분(晨分)이라고 한다. 혼분과 신분을 혼명분(昏明分) 또는 신혼분(晨昏分)이라고 한다. 혼각부터 효각 사이를 야각(夜刻)이라고 정의하고, 이 시간을 다섯 등분하여 각각을 1경(更), 2경, 3경, 4경, 5경이라고 한다. 각 경을 다시 다섯 등분하여 그 각 시간 조각을 점(點)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경점법을 제대로 운용하려면 주야각을 계산하거나 측정해야 한다.
한편 주야각은 일식과 월식 계산에도 이용되었다. 즉 일식이 야각에 발생하거나 월식이 주각에 발생하는 것으로 계산되면 식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하였다(『세종실록』 21년 8월 2일).
변천
조선전기에 시행된 『칠정산(七政算)』 또는 『대통력(大統曆)』 등의 역법에서는 하루를 100각으로 나누었고, 조선후기 1654년부터 시행된 시헌력(時憲曆)에서는 하루를 96각으로 나누었다. 또한 조선전기에는 혼명분은 해 질 때부터 2.5각 및 해 뜨기 전 2.5각을 합쳐서 계절에 상관없이 5각으로 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해의 고도가 0°일 때부터 해가 지평선에서 수직으로 18° 아래에 있을 때까지를 혼명분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이것을 계산하려면 구면기하학과 삼각함수를 이해해야 했으므로 계산을 못하다가, 1789년에 김영(金泳)이 계산을 해냄으로써 제대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 남문현, 『장영실과 자격루』,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 안상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하학 뉴턴의 프린키피아』, 동아시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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