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중추고(從重推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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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엄중하게 캐물어서 밝히고, 관리의 업무상 과실을 징계하여 처리함.

내용

종중추고(從重推考)는 일반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벼슬아치 즉 관리의 업무상 과실이나 근무 태만, 책임 회피 등에 대한 주의와 경계를 목적으로 행해지는 경향이 많았다. 근무 태만이나 업무상 과실 이외에 왕이 내린 관직 임명을 거부한 경우에도 종중추고를 받았다. 예를 들어 박세당(朴世堂)은 숙종으로부터 여러 차례 관직 제수(除授)의 명을 받았는데도 매번 병을 핑계하고 임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왕은 박세당을 종중추고 한 후 속히 왕명을 받들도록 했다. 왕명에 대한 불복종과 불이행을 경계하고자 종중추고 한 것이다.

종중추고는 처벌 목적이 아니라 징계와 경계, 경책(警責) 즉 정신 차리도록 꾸짖기 위함이었다. 숙종 때 남구만은 공홍감사(충청감사) 이단석(李端錫)이 사채(私債)를 강제로 받아낸 일이 불법으로, 법을 어겼으므로 추고만 하고 그만 둘 수 없으니 그를 파직하도록 요구하였다. 이에 숙종은 이단석이 치적이 있으므로 종중추고만 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 1683년(숙종 9) 3월 왕의 명령을 민간에 즉시 반포하여 알리지 않은 죄를 물어 해당 수령들을 파직하도록 요청하였으나, 왕은 흉년에 부임하는 관원들을 맞이하고 보내는 데 폐단이 있다는 이유로 종중추고만 하도록 명하기도 하였다.

용례

備局啓曰 今見留都大將狀啓 陵寢至近之地 百年長養之木 斫伐頗多云 柳琳所犯 極可驚愕 所當拿鞫定罪 而方受重任 姑先從重推考 請令尹知敬 拿致斫木時將官 決杖 從之 (『인조실록』 5년 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