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인(貞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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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한제국 때 문무 관료 중 2품의 처가 받는 외명부 봉작(封爵).

개설

조선시대에 명부(命婦)는 봉작을 받은 여성들을 지칭했다. 명부에는 외명부와 내명부가 있었다. 외명부의 봉작 대상은 왕녀, 왕세자녀, 왕의 유모, 왕비의 모, 종친의 처, 문무 관료의 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문무 관료의 처를 대상으로 하는 봉작 제도는 조선 건국 직후부터 정비되기 시작하였다. 『태조실록』에 의하면 문무 관료의 처는 남편의 관작에 따라 1품관의 아내를 군부인(郡夫人), 2품은 현부인(縣夫人), 정3품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 이상은 숙인(淑人), 3품은 영인(令人), 4품은 공인(恭人), 5품은 의인(宜人), 6품은 안인(安人), 참외(參外)는 모두 유인(孺人)으로 봉작했다(『태조실록』 5년 5월 20일).

1417년(태종 17)에는 문무 관료의 처 가운데 1품 관료의 처는 군부인에서 정숙부인(貞淑夫人)으로, 2품 관료의 처는 현부인에서 정부인(貞夫人)으로 고쳤다(『태종실록』 17년 9월 12일).

이러한 변화를 거쳐 성립된 『경국대전』의 외명부 규정에 의하면, 1품의 문무 관료의 처는 정경부인(貞敬夫人), 2품의 처는 정부인, 정3품 당상관의 처는 숙부인(淑夫人), 3품의 처는 숙인, 4품의 처는 영인, 5품의 처는 공인, 6품의 처는 의인, 7품의 처는 안인, 8품의 처는 단인(端人), 9품의 처는 유인이었다.

이에서 보듯이 정부인은 현부인이 바뀐 것인데, 그 이유는 읍호(邑號)를 왕실 여성에게만 붙이고 문무 관료의 처에게는 붙이지 않음으로써 양자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변천

조선시대의 내명부는 1894년(고종 31)에 군국기무처에서 제의한 개혁안에 의해 명부사(命婦司)로 바뀌어 궁내부에 소속되었다(『고종실록』 31년 7월 18일). 명부사는 기존의 내명부와 외명부가 통합된 것이다. 하지만 명부사는 대한제국 때에 다시 내명부와 외명부로 나뉘었다. 대한제국 멸망 후 일제는 대한제국의 황실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1910년(순종 3)에 이왕직 관제를 공포하였는데(『순종실록부록』 3년 12월 30일), 이왕직에는 서무계·회계계·장시계(掌侍係)·장사계(掌祀係)·장원계(掌苑係)의 5개 계가 설치되었다. 이때 내명부 중의 일부 궁녀만 장시계에 소속되고, 그 밖의 내명부 후궁과 외명부는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당육전(唐六典)』
  • 김선곤, 「이조초기 妃嬪考」, 『역사학보』 21, 1963.
  • 이영숙, 「조선초기 內命婦에 대하여」, 『역사학보』 96,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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