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삼(長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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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가 가사 안에 입는 옷.

개설

승려들이 가사(袈裟) 안에 입는 장삼은 윗옷인 편삼(褊衫)과 아래옷인 군자(裙子)를 위아래로 합쳐 꿰맨 형태이다. 대개 검정 또는 회색 삼베로 만들며 소매가 넓고 허리에는 큼직한 주름을 잡았다.

연원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는 가사만을 입었다. 이후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기후와 의습(衣習)의 영향으로 편삼과 군자를 가사 안에 입은 방식이 생겼다. 한반도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삼국시대 중엽부터 고려초까지는 가사 안에 전통적인 포를 착용하거나 중국의 편삼과 군자를 착용하였다. 포는 무릎에서 발목까지 오는 겉옷이다.

고려시대에 승려들은 주로 편삼과 군자를 합쳐 꿰맨 직철(直裰)을 입었는데 이 직철을 장삼이라고 불렀다. 이후 상하의가 붙은 형태의 장삼이 승려의 법의(法衣)가 되었다. 고려시대 장삼의 색상으로 하늘색이나 흰색이 사용되었다.

내용 및 변천

조선초기에는 장삼의 색상이 남색과 흑색으로 만들어졌으나, 1429년(세종 11) 승인의복흑색금지령(僧人衣服黑色禁止令)에 의해 흑색 사용이 금지된 후 회색이 사용되었다. 1424년(세종 6) 일본 사신에게 면주가사와 함께 장삼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6년 1월 19일). 1448년(세종 30)에 사신 자격으로 내방한 일본 승려들이 소헌왕후의 신위가 봉안된 휘덕전(輝德殿)에서 진향(進香)하는 의식을 치렀는데, 조정에서는 승려들의 직급에 따라 차등 있게 장삼을 비롯한 의복을 내렸다. 상·부 관인(上副官人)은 검은 빛깔의 삼베로 만든 흑마포장삼(黑麻布長衫)과 흰색 모시로 만든 백저포장삼(白苧布長衫), 푸른 비단으로 만든 승려들의 모자인 청사승관(靑紗僧冠)을 각각 하나씩 내려 주고, 관인 승려를 모시는 시봉승(侍奉僧) 8명에게는 흑마포장삼과 푸른 빛깔의 모시로 만든 청저포승관(靑苧布僧冠)을 각각 하나씩 내려 주었다(『세종실록』 30년 6월 21일). 이 기록으로 볼 때 승려들이 직급에 따라 각각 다른 종류의 장삼을 착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의 표충사에 있는 사명(四溟) 대사(大師)의 장삼은 현존하는 승복 장삼으로는 가장 오래된 유물 자료이다. 무명으로 제작되었으며 상하의를 꿰맨 형태로 조선중기 고승이 착용했던 장삼의 실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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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김동욱, 『증보한국복식사연구』, 아세아문화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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