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유(佛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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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불전(佛殿)을 밝히는 데 쓰이는 기름.

개설

불유(佛油)는 부처를 공경하여 예배를 드리거나 사찰의 법당을 밝히는 데 쓰이는 기름을 가리킨다. 넓은 의미로는 공양을 의미하기도 하고,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촉(燈燭)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대개 불교에서 등불은 지혜·교화 등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등촉을 마련하기 위해 일반인의 시주를 유도하는 모연(募緣)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불교계 내에서 계(契)를 결성하여 자체적으로 조달하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사찰에서 등불은 부처에게 올리는 공양물(供養物) 가운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부처에 대한 공경을 드러낼 뿐 아니라 중생의 번뇌를 소멸시킨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등에는 생사(生死)의 험난한 길을 비추고, 무명(無明)의 두터운 밤을 깨뜨린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때문에 조선시대 불교계에서는 불유를 마련하기 위한 모연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1468년(세조 14)에 승려 수미(守眉)는 왕에게 글을 올려, 여러 승려와 재가(在家) 신자의 무리인 사장(社長)이 원각사(圓覺寺)에서 쓸 불유를 모연한다고 하면서 여러 고을에 폐를 끼친다고 아뢰었다. 생업이 없는 남녀가 돌아다니면서 모연을 핑계로 재물을 모금해 생계를 유지하는 까닭에 민간에 폐를 끼친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에 세조는 내섬시(內贍寺) 정(正)손소(孫昭)를 보내 국문하게 하였다(『세조실록』 14년 5월 4일). 여기에서 불유를 모연한다는 표현을 쓴 것은 불단의 등불이 부처에게 바치는 대표적인 공양물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불유는 승려들이 사찰 소유의 토지에서 규정 이상의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구실이 되기도 하였다. 1485년(성종 16)에 승정원에서는, 당시 승려들이 사찰 소유의 토지를 백성들에게 빌려 주고 토지세를 거두어들일 때 불유 값, 청소비, 자릿세, 혹은 심부름에 대한 대가 등의 명칭으로 여러 가지 물건을 더 거두어 민폐가 적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그런 까닭에 역대 왕의 명복을 비는 능침사찰(陵寢寺刹) 이외에는 사찰 소유의 토지세를 영구히 없앨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왕은 토지세를 이미 삭감한 적이 있어 더 이상 내릴 수 없다며 허락하지 않았다(『성종실록』 16년 7월 6일).

조선후기 불교계에서는 등촉을 매개로 사원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승려와 신도들이 계를 결성하여 사원경제를 유지해 나간 것이다. 계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일정 기간 동안 일정한 액수의 금전을 내어 서로 돕거나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는 모임이다. 이른바 등촉계(燈燭契)는 불전을 밝히는 등촉을 마련하기 위한 계로, 등촉의 다른 이름을 따서 장명등계(長明燈契)라고도 하였다. 통도사(通度寺)·오어사(吾魚寺) 등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에서 등촉 마련을 위한 계를 결성하였다. 모연 활동에서는, 등촉은 번뇌와 무명을 광명으로 이끈다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등촉을 시주하면 조상이 극락왕생하고 진리를 밝히게 될 것이라며 그 공덕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18세기 말 실상사(實相寺)의 「실상사법전등촉계서(實相寺法殿燈燭契序)」에 따르면, 출가자와 재가 신자가 함께 참여하여 계금(契金)을 마련해 등촉의 재원(財源)을 시주하였다고 한다.

한편 같은 글에 "지금 암자는 근근이 이어 가지만, 사찰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 없어 아침저녁의 예불에도 법당은 깜깜하고 부처님의 형상도 어둠 속에 묻혀 있다."라는 내용도 보인다. 이처럼 불유는 ‘불전을 밝히는 빛’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부처에게 공양을 하는 물품이라는 의미로 자주 쓰여졌다.

참고문헌

  •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이재창, 『한국불교사원경제연구』, 불교시대사, 1993.
  • 채상식, 『고려후기불교사연구』, 일보각, 1991.
  • 홍윤식, 『한국불교사의 연구』, 교문사, 1998.
  • 한상길, 「조선후기 사찰계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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