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浮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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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부처와 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탑을 지칭하며, 승려를 포함한 불교도를 일컫는 용어로도 쓰임.

개설

부도(浮圖)는 크게 3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첫째,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佛塔)과 승려의 사리를 넣은 탑도 모두 부도라고 통칭하였다. 둘째, 붓다의 한자 음역으로 부처를 의미한다. 셋째, 승려를 포함한 불교를 믿는 모든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쓴다.

연원 및 의미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를 한자어로 음역한 것으로, 부처를 음역한 것이라고도 하고 또는 탑을 의미하는 ‘스투파(stupa)’가 변화한 전음(轉音)이라고도 한다. 어원으로 본다면 붓다가 곧 부도이며 불상이나 불탑 등의 형상도 모두 부도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승려 등 불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까지도 포함된 통칭으로 쓰여졌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3가지의 뜻이 모두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1470년(성종 1) 일본국에서 보낸 서계의 기록을 보면 부도씨(浮圖氏)를 경앙한다는 구절이 있는데(『성종실록』 1년 9월 19일), 여기서 부도씨는 석가모니 부처 그 자체를 의미한다.

또한 승려를 의미하는 용례는 1424년(세종 6)에 일본 석성관사(石城管事) 평만경(平滿景)이 조선의 예조에 보낸 글에 나타난다. 당시 일본으로 표류해 와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자 중에 양적(亮積)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가 부도라고 설명했는데(『세종실록』 6년 6월 16일), 여기서 부도는 승려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1821년(순조 21) 이응준이라는 유생이 회암사의 북쪽 산비탈에 있던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 세 선사(禪師)의 부도와 사적비를 파괴하고 그곳에 자신의 아버지를 묻었다는 기록이 있는데(『순조실록』 21년 7월 23일), 여기서 부도는 사리탑을 의미한다. 승려의 사리탑은 부도라는 명칭 외에도 승탑(僧塔), 묘탑(廟塔) 등으로 불렸다. 『조선왕조실록』 원전에는 부도의 한자 표기를 ‘부도(浮圖)’와 ‘부도(浮屠)’로 병행하였는데, ‘부도(浮屠)’라고 표기한 것이 ‘부도(浮圖)’의 경우보다 10배 정도 많다.

내용 및 변천

(1) 조선시대 이전

부도가 승탑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 예는 통일신라의 기록에서부터 보이고 있다. 872년(신라 경문왕 12)에 건립된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의 비문 중에 돌 부도를 세우는 땅이라는 뜻의 ‘기석부도지지(起石浮屠之地)’라는 구절은 부도가 곧 승려의 묘탑 즉 승탑을 의미했음을 말해 준다.

탑이 주로 사찰 안에 있는 반면 부도는 사찰 밖에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선종(禪宗)의 유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선종이 들어온 것은 821년 도의(道義) 선사(禪師)에 의해서인데 그는 당나라에 선법을 전수하여 조사선(祖師禪)을 전하였으나, 당시 불교계는 유식과 화엄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에 의거하며 조사선을 전하였다. 조사선에서는 마음이 곧 부처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깨달은 선사의 죽음은 부처의 죽음과 다를 바가 없기에 선사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하여 부도를 만들게 된 것이다.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지에는 도의 선사 승탑으로 추정되는 부도가 남아 있다. 이후 선종 9산(九山)이 각기 계보를 이루었고, 제자들은 조사(祖師)를 숭앙하여 조사가 입적한 뒤에는 후세에 길이 보존될 조형물인 부도를 건립하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신라의 부도는 전체적으로 평면이 8각으로 이루어진 팔각당형(八角堂形)이 많았다. 팔각당형 부도는 기단부, 팔각의 탑신부, 옥개석으로 구성되었으며 상륜부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전라남도 구례군 연곡사(鷰谷寺)의 동부도, 북부도가 대표적이다.

고려전기에는 신라의 전통을 계승하여 여주 고달사지 부도와 같이 신라의 전통을 계승한 팔각당형 부도가 만들어졌다. 다만 신라의 부도는 선종 종파에 의해서 조성되었다면 고려시대 부도는 종파에 관계없이 국사나 왕사의 지위에 오른 승려에 한해 세울 수 있는 기념적인 조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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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에는 대각(大覺) 국사(國師) 의천(義天)의 입적 이후 화장묘를 선호하는 장례법이 유행하면서 부도 조성이 한동안 중단되었다. 그러나 고려후기에 와서 선종이 유행하면서 부도 조성이 다시 시작되었는데, 원나라 간섭기에는 인도 승려 지공(指空)의 부도가 세워지기도 하면서 국사나 왕사가 아닌 승려도 부도를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부도의 형태도 평면이 4각으로 변해 일반 석탑과 같은 형태의 부도와 팔각당형에서 탑신석이 구의 형태를 하고 있는 원구형(圓球形) 부도, 범종 모양의 부도가 함께 제작되었다. 범종 모양의 석종형(石鐘形) 부도는 인도의 복발탑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모양이 종(鐘)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으로 옥개석이 없다.

고려말기의 대표적인 부도는 나옹(儺翁) 선사 부도이다. 나옹 선사가 입적한 후 제자들은 사리를 분리하여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에는 원구형(圓球形), 여주의 신륵사에는 석종형, 강원도 원주의 영전사에는 불탑형으로 다양한 유형의 부도를 조성하였다. 특히 신륵사의 나옹 화상 부도는 최초의 석종형 부도로 부도 앞에 장명등을 세워 능묘 양식의 기본을 따랐는데 이것은 이후 조선 시대 석종형 사리탑의 원형이 되었다.

(2) 조선전기

조선초기에는 고려말에 대두된 불교계의 폐단을 개혁하고자 노력하였기 때문에 부도 또한 고려초기의 전형적인 유형인 팔각당형으로 희귀하였으며 분사리 부도의 건립 역시 중단되었다. 부도의 조성도 왕사나 국사의 지위에 오른 승려들에 한해 설립되었다. 그러나 무학(無學) 대사(大師)를 끝으로 더 이상 왕사와 국사가 배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1407년(태종 7) 무학 대사 부도를 마지막으로 30년간 부도 건립이 중단되었다.

무학 대사의 제자였던 기화(己和) 대사(大師)의 부도가 건립되면서 다시 부도 조성이 시작되는데 스승의 예를 따라 원구형으로 건립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 발원 부도와 민간 발원 부도에는 양식 차이가 없으며 단지 지역성만이 반영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왕실 발원 부도는 왕릉의 장명등이나 병풍석에 나타나는 문양 등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조각이 화려하고 정교하였다.

이 시기 나옹 선사의 석종형 부도를 그대로 계승한 것은 여주 신륵사의 보제존자(普濟尊者) 부도가 대표적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부도의 형식을 따른 일반인의 묘탑(墓㙮)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경기도 양주시 수종사의 정의옹주탑(貞懿翁主塔)은 승려가 아닌 일반인이지만 팔각당형 부도 형태로 조성되었다. 일반인이 부도의 형식으로 사후 조형물을 조성하는 것은 조선후기까지도 지속되었다.

(3) 조선후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승군들의 활약으로 조선후기에 이르면 불교계와 승려에 대한 인식이 이전에 비해 상당히 높아진다. 이러한 분위기를 틈타 간헐적으로 세워지던 부도의 건립이 성행하고 그 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전국 주요 사찰에 다수의 부도가 건립되고, 승려들은 부도 조성을 사찰의 위상과 법통을 세우는 일로 여겨 한 사찰에 수십기의 부도를 한꺼번에 조성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조성된 부도의 수가 2,000여 기에 이를 만큼 급격하게 늘게 된 이유는 고승대덕에게만 허용되던 부도 조성이 승려라면 누구나 세울 수 있도록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작이 비교적 쉬운 석종형 부도가 사찰마다 수십기씩 부도군을 이루며 조성되었다.

이 시기 부도는 탑신의 형태와 옥개석의 유무에 따라 전각형, 석종형, 구형으로 분류된다. 전각형은 고려의 팔각당형과 비슷하나 탑신이나 옥개석의 형식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에 통칭하여 이른 것이다. 석종형은 17세기 후반에 많이 세워졌다. 초반에는 범종의 형태를 충실히 모방하여 유곽과 유두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구형은 18세기 후반부터 건립이 증가하여 19세기에 가장 많이 조성되었다.

참고문헌

  • 『위서(魏書)』
  • 김정원, 「조선후기 호남지역 승탑과 석장 연구」, 명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소재구, 「신라 하대와 고려시대 승탑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2.
  • 엄기표, 「순천 송광사의 조선후기 석조부도 연구」,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30호, 한국문화사학회, 2008.
  • 이수정, 「조선전기 승탑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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