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叢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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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불교 사찰 또는 교단을 이르던 말.

개설

총림(叢林)은 산스크리트어로는 ‘Vindhyavana’이며, 한자로는 빈다바나(貧陀婆那)라 음역한다. 단림(壇林)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무가 빽빽한 숲’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당시에 승가(僧伽)가 화합하여 나무숲과 같이 조용한 곳에 함께 거하였던 데서 유래하였다. 또 다르게는 많은 승려와 속인들이 모인 것을 나무가 우거진 수풀에 비유한 데서 비롯된 명칭으로 보기도 한다.

동아시아 불교에서 총림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선원(仙苑), 선림(禪林) 등 많은 승려들이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림이라 불렀으며, 선승이 좌선하며 참선하는 도량을 뜻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한국불교에서는 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이 모두 갖춰진 곳을 총림이라고 하는데, 영축총림(靈鷲叢林) 통도사(通度寺), 해인총림(海印叢林) 해인사(海印寺), 조계총림(曹溪叢林) 송광사(松廣寺), 덕숭총림(德崇叢林) 수덕사(修德寺),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白羊寺) 등 오대 총림이 있다.

내용 및 변천

한국불교에서 총림이라는 말은 고려시대 초기에 세워진 지곡사 진관선사비(智谷寺 眞觀禪師碑)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선종 교단 또는 소속 산문(山門)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특히 이규보(李奎報)의 「용담사총림회방(龍潭寺叢林會牓)」에 따르면, 태조 왕건 이래로 2년에 한 번씩 각 지역의 선승(禪僧)들이 개경에 모여 담선법회(談禪法會)를 열었다. 또한 담선법회 1년 전에는 구산(九山)의 승려들이 각각의 산문에서 겨울 동안 법회를 열었는데, 이것을 총림이라고 했다고 한다. 용담사에서 개최한 가지산문의 총림에서는 장로들이 서로 지행(志行)을 연마하고 심학(心學)을 연구하며 종문(宗門)을 정돈했다고 한다. 이처럼 총림은 기본적으로는 선승들이 함께 수행하는 장소 또는 모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으며, 여기에서 의미가 확산되어 사찰, 선종 교단, 더 나아가 불교 교단 자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도 총림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원각사(圓覺寺) 종에 새겨진 종명(鐘銘)에는 "원각이라는 큰 총림을 도성 안에 세우게 하였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때 총림은 사찰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1466년(세조 12)에 세조는 일본 왕에게 보낸 글에서, 상원사에서 일어난 상서로운 일들에 대해 말하면서 상원사 총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세조실록』 12년 윤3월 28일). 현종 연간에 경상도 생원 김강(金鋼) 등은 이이(李珥)의 문묘 종사를 반대하는 상소에서, 이이가 젊었을 때 잠시 불교에 귀의했던 일을 장횡거(張橫渠)의 사례에 빗대어 말하면서 총림에 들어갔다고 표현하였다(『현종실록』 4년 6월 10일). 이러한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총림은 사찰 또는 불교 교단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동문선(東文選)』
  • 이지관 역,『校勘譯註 歷代高僧碑文』,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0.
  • 운허 용하, 『불교사전』, 동국대학교 역경원, 1961.
  • 고영섭, 「조계종 오대 총림의 재검토」, 『보조사상』31, 2009.
  • 『新版 禪學大事典』, 大修館書店,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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