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坐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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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를 틀고 마음을 집중하여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들어가는 불교의 수행 방법.

개설

좌선(坐禪)은 두 다리를 포개 앉아 왼쪽 손바닥 위에 오른쪽 손바닥을 올려놓고 허리를 곧게 편 뒤, 마음을 한곳에 모으고 잡념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행 방법을 말한다. 좌선법은 6세기에 달마(達磨)에 의해 중국에 전래되었으며, 당나라 때 혜능(慧能)이 남종선(南宗禪)을 형성한 이후 크게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는 9세기에 전래되어, 신라말기 이래 오늘날까지 불교의 가장 보편적인 수행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내용 및 특징

(1) 의미

좌선은 한자인 ‘좌(座)’와 팔리어 ‘드야나(dhyāna)’의 음역어인 ‘선나(禪那)’의 합성어이다. 드야나 즉 선(禪)은 마음을 한 대상에 집중하여 흩어지지 않도록 하면서 진리를 발견하려는 수행법을 말한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정(定)’의 측면과 진리를 발견하려는 ‘혜(慧)’의 측면을 균등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정혜(定慧)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정혜의 경지에서는 마음을 맑은 거울과 같은 상태로 만들어 일체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털끝만 한 얽매임도 없게 한다. 이런 상태에 철저해야만 비로소 객관적인 얽매임이 없고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사유나 판단이 나온다고 보는 것이다. 바로 이 ‘정’과 ‘혜’가 동시에 균등하게 되는 것이 불교 본래의 선이다.

(2) 방법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옷과 허리띠를 느슨하게 하고 자세를 바르게 한 뒤에 반가부좌나 결가부좌를 한다. 반가부좌는 왼발을 오른발 위에 올려놓고 허리를 펴서 앉는 방법을, 결가부좌는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앉는 방법을 말한다. 그런 다음 오른손을 왼발 위에 올려놓고 왼 손바닥을 오른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며 양손의 엄지손가락 끝을 서로 맞대어 받친다. 몸을 천천히 앞뒤 좌우로 몇 번 흔들어 편안하게 한 뒤 가만히 정과 혜를 균등히 수행하는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선정에 들어간다.

변천

선이 중국에 전래된 시기는 6세기경으로 추정되는데, 종파로 성장한 것은 8세기 이후의 일이다. 중국 선종에서는 부처의 마음은 ‘선’이고 부처의 말은 ‘교(敎)’이며, 부처의 마음은 가섭에게 전해지고 부처의 말은 아난에게 전해졌다고 여겼다. 즉, 아난은 석가모니의 설법을 암송하여 전수하였고, 가섭은 석가모니로부터 염화미소(拈華微笑)의 마음을 인가(印可) 받아 전수하였으므로 선이 교보다 수승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가섭에게서 전해진 선이 달마에 이르러 중국에 전래되었다고 믿었다. 중국의 선종은 이후 오조 홍인(弘忍)과 그 제자 신수(神秀), 육조 혜능(慧能) 등에 의해 크게 발전하였다. 신수는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여 북종선(北宗禪)의 조사(祖師)가 되었고, 혜능은 남부 지역에서 활동하여 남종선의 초조(初祖)가 되었다. 북종선은 점차 쇠퇴하여 그 명맥이 끊어졌지만, 남종선은 번성하여 당송(唐宋)대에 이른바 오가칠종(五家七宗)을 형성하였다. 오가칠종이란 임제종·조동종·위앙종·운문종·법안종 등의 5가(家)와, 임제종에서 갈라져 나온 황룡파·양기파 등의 2파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에서 선종이 번성하던 9세기에 남종선이 전래되었다.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도의(道義)가 821년(신라 헌덕왕 13)에 처음으로 남종선을 소개하였고, 그 이후 홍척(洪陟)·혜철(惠哲)·무염(無染)·체징(體澄)·현욱(玄昱)·범일(梵日)·도윤(道允)·긍양(兢讓)·이엄(利嚴) 등이 중국에 유학하여 남종선의 선맥을 계승하였다. 이들에 의해 개창된 산문을 흔히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 부른다. 그 밖에도 혜소(慧昭)가 경상남도 하동의 쌍계사에서 개창한 쌍계산문, 순지(順之)가 개성 서운사에서 개창한 오관산문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 고려시대 초기에 그 명맥을 상실하였다. 그에 비해 구산선문은 조계종으로 통합되는 조선시대 초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불교 종파가 통폐합됨에 따라 여러 종파가 선종과 교종으로 묶여 그 명맥을 유지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에는 선종이 불교계를 대표하였다. 조선시대 후기의 선종은 중국 임제종의 법맥을 계승하였으므로, 벽을 향해 결가부좌하여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법이 유행하였다. 간화선법은 고려시대에 지눌에 의해 처음으로 정착되었고, 고려시대 말기에 태고와 나옹이 임제 법맥을 전수하면서 더욱 중시되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가장 보편적인 화두는 ‘이 뭣고?’,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무(無)’ 등이었다. 그 당시 수행자들은 좌선을 통해 이 물음들을 타파해 가며 불교의 진리에 다가가려 하였다.

참고문헌

  • 김영태, 『한국불교사』, 경서원, 1997.
  • 정성본, 『선의 역사와 사상』, 불교시대사, 1999.
  • 이부키 아츠시 지음, 최연식 역, 『중국 선의 역사』, 씨아이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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