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쌍수(沙羅雙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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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가 입멸할 때 사방에 한 쌍씩 서 있던 사라수.

개설

석가모니는 쿠시나가라 서남쪽의 사라수 숲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한 뒤, 사라수 네 쌍이 있는 숲 속에서 서쪽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 입멸하였다. 석가모니가 입멸한 곳에 있던 네 쌍의 사라수를 사라쌍수라 부르는데, 석가모니는 이 사라수 아래에서 80세의 인생을 마치고 더 이상 윤회(輪廻)가 없는 열반(涅槃)에 들었다고 한다.

내용 및 특징

‘사라(沙羅)’는 산스크리트어 ‘살(śāl)’ 혹은 ‘사라(śāla)’에서 나온 말로, 견고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사라수는 ‘견고한 나무’라는 뜻이 된다. 석가모니는 80세에 쿠시나가라 서남쪽 3리 지점에 있는 사라수 숲에서 설법을 하고 난 뒤, 피로에 지친 상태에서 머리를 북쪽으로 하여 서쪽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몸을 눕힌 채 입멸하였다. 석가모니의 사방에는 사라수가 한쌍씩 서 있었는데, 4쌍의 사라수 가운데 각 쌍의 한 그루가 말라 죽었다고 한다. 이를 사고사영(四枯四榮)이라 한다. 이때 4그루의 사라수가 하얗게 변하여 석가모니의 몸을 덮었다고 해서, 그 숲을 백학(白鶴)의 색에 비유하여 학림(鶴林)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라쌍수가 한 차례 등장한다. 1404년(태종 4) 검교정당문학(檢校政堂文學) 조운흘(趙云仡)이 세상을 떠나자 『조선왕조실록』에 그의 묘지(墓誌)가 실렸는데, "공자(孔子)는 행단(杏壇) 위요 석가(釋迦)는 사라쌍수 아래였으니, 고금의 성현이 어찌 독존(獨存)하는 자가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이 묘지문은 조운흘이 죽기 전에 직접 지은 것으로, 조선시대 초기 유·불 교체기 관료들의 사유 세계를 잘 보여 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태종실록』 4년 12월 5일).

참고문헌

  • 동국역경원 편, 『대장일람집』, 동국역경원, 2000.
  • 동국역경원 편, 『어제비장전』, 동국역경원, 1999.
  • 中村元·奈良康明·佐藤良純 共著, 김지견 역, 『불타의 세계』, 시공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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