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月精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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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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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월정사 |
한글표제 | 월정사 |
한자표제 | 月精寺 |
상위어 | 교종(敎宗), 삼십육사(三十六寺) |
관련어 | 선교양종(禪敎兩宗) |
분야 | 문화/종교/불교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황해도 문화현 |
시대 | 통일신라~조선 |
집필자 | 김용태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월정사(月精寺)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6년 4월 5일 |
세종대 국가에서 공인한 36사(寺) 가운데 하나로, 황해도 문화현구월산에 위치한 절.
개설
월정사(月精寺)는 황해도 문화현구월산(九月山)에 위치한 사찰로, 통일신라시대인 846년(신라 문성왕 8)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월정사의 모습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조선초에 중창되었고 세종대 선·교 양종으로 정리할 때 교종 18개사의 하나였다. 조선후기에도 몇 차례 중수를 겪으면서 근대기까지 존속하였다.
변천
조선 개창 후 태종대에 들어 억불 정책이 본격화되었는데, 불교 종파를 11개에서 7개로 축소하였고 이들 종파에 속한 242개 사찰만이 공적 수조지(收租地)와 사원노비의 소유가 인정되었다.
이후 1424년(세종 6) 세종은 기존의 7개 종단을 선·교 양종으로 나누고 각각 18개씩 36개 사찰만 공인하였는데, 이때 월정사는 교종 18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월정사에는 원래 보유 토지가 100결이 있었는데 이때 추가로 100결이 지급되어 200결을 가지게 되었고 거주하는 승려는 100명으로 정해졌다. 같은 황해도 소재의 해주 신광사는 원속전 200결에 50결이 추가되어 250결이 되었고 거주 승려는 120명으로 월정사보다는 규모가 큰 편이었다(『세종실록』 6년 4월 5일). 『세종실록』「지리지」의 문화현 항목에서도 현의 북쪽에 위치한 월정사는 교종에 속하며 전지 200결이 내려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월정사와 관련된 특별한 사건이나 활동은 확인되지 않으며 조선후기를 거쳐 근대기까지 부침을 겪으면서도 존속하였다.
참고문헌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사찰문화연구원, 『북한사찰연구』, 한국불교종단협의회, 1993.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高橋亨, 『李朝佛敎』, 寶文館,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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