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령부(承寧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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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태상왕(太上王)인 태조와 관련된 사무를 전담하던 관서.

개설

1400년(정종 2) 태상왕인 태조를 위해서 설치한 관서로, 태조의 호종(扈從)이나 문안 등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1405년(태종 5) 이조(吏曹)의 속아문으로 편성되었다가 1411년에 혁파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400년 6월 1일 정종이 상왕으로 물러나면서 태조가 태상왕이 되자, 세자 곧 후일 태종의 건의에 따라 태상왕이 거처하는 궁궐을 덕수궁(德壽宮)이라 명명하고 태조와 관련된 업무를 전담하기 위해 승령부를 세웠다. 이는 태상왕이 된 태조를 위로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었다(『정종실록』 2년 6월 1일).

조직 및 역할

승령부는 설치와 동시에 판사(判事)와 윤(尹)·소윤(少尹)·판관(判官)·승(丞)·주부(注簿)의 직제가 설치되었다. 처음 판사에 우인렬(禹仁烈)이, 윤에 손흥종(孫興宗)·정용수(鄭龍壽) 등이 제수되었다. 관서의 반차(班次)는 당시 재정을 관장하던 삼사(三司)의 아래에 두었다. 승령부는 조회에 참여하였고(『태종실록』 2년 2월 11일), 태조에 대한 문안(『태종실록』 1년 12월 17일)이나 호종(扈從)(『태종실록』 2년 12월 3일) 등을 담당하였다.

변천

승령부는 1403년(태종 3) 6월 관제 개편 당시 내장고(內藏庫)를 병합하였고(『태종실록』 3년 6월 29일), 1405년 3월 육조의 서무 분장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속사(屬司)와 속아문(屬衙門)을 정비할 때에 이조(吏曹)의 속아문(屬衙門)으로 편제되었다(『태종실록』 5년 3월 1일). 다시 1409년 12월 속관인 소윤 2직이 혁거되었고, 1411년 6월 관제 개편 때 전농시(典農寺)에 합쳐지면서 폐지되었다. 그리고 승령부에 속해 있던 토지와 노비 등은 모두 세자부인 경승부(敬承府)로 이관하였다(『태종실록』 15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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