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이씨(淑儀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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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 = ?]. 조선의 10대 왕인 연산군(燕山君)의 후궁. 본관은 양성(陽城)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이공(李拱)이고, 어머니는 봉화 금씨(奉化琴氏)금이간(琴以間)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세종(世宗)대 천문학자로 활동한 이순지(李純之)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중추원(中樞院) 부사(副使)를 지낸 이맹상(李孟常)이다.

연산군의 후궁

이숙의(李淑儀)는 어려서 소혜왕후(昭惠王后)의 시녀로 입궁하였다. 연산군의 총애를 받으며, 1498년(연산군 4) 연산군과의 사이에서 아들 양평군(陽平君)이성(李誠)을 낳았다.(『중종실록(中宗實錄)』 8년 1월 7일),(『중종실록』 8년 1월 7일) 그리고 1506년(연산군 12) 숙원(淑媛)에 봉해졌다가,(『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12년 8월 10일) 이후 숙의가 되었다.

현재 남겨진 기록을 보면 이숙원 본인의 행적보다는 그녀의 가족들과 관련된 내용들이 더 많다. 연산군 대에 이숙의의 오빠였던 이칭수(李稱壽)가 경기심약(京畿審藥)의 임기가 만료된 후에도 계속해서 그 지위에 잉임(仍任)되었던 일,(『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10년 9월 8일) 고안정(高安正)이라는 관리가 이숙의의 아우를 첩으로 삼아 그 세력을 믿고 폐해를 저질렀다는 기록이[『중종실록』중종 2년 8월 9일 5번째기사] 것으로 보아 이숙의가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언제 숙의로 봉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선원록(璿源錄)』과 『중종실록』 8년의 기록에는 숙의로 기록되어 있다. 이숙의는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연산군이 폐위된 후 폐서인되어 사제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되며,(『중종실록』 1년 9월 5일) 이후 행적은 알 수 없다.

묘소와 후손

이숙의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숙의는 연산군과의 사이에서 1남을 두었는데, 양평군이성이다. 양평군은 어려서 이숙의의 아버지 이공의 외사촌인 이손(李蓀)의 집에서 지냈다. 중종반정 이후 수안(遂安)으로 유배되었다가(『중종실록』 1년 9월 5일) 1506년(중종 1) 9월 24일 폐세자 이황과 함께 사사(賜死)되었다.(『중종실록』 1년 9월 24일)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김범, 『연산군』, 글항아리, 2010.
  • 이미선, 「조선시대 후궁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2.
  • 지두환, 『연산군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