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千字文)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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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천자문 |
한글표제 | 천자문 |
한자표제 | 千字文 |
분야 | 문헌 |
유형 | 한문 |
지역 | 중국 |
시대 | 양 |
왕대 | 무제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주흥사 |
권책수 | 1책 |
소장처 | 규장각 등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천자문(千字文) |
중국 양(梁)나라의 주흥사(周興嗣, 470?∼521)가 무제(武帝)의 명으로 지은 책.
개설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양(梁)나라의 주흥사(周興嗣, ?∼521)가 무제(武帝)의 명으로 지은 책이다. 1구 4자 250구, 모두 1,000자로 된 고시(古詩)이다. 하룻밤 사이에 이 글을 만들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이 책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285년 백제의 왕인 (王仁)이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연대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해도, 『천자문』은 위에서 말한 책과는 다른 것으로 추측된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한문 초학자를 위한 교과서 겸 습자교본으로, 내용은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난다. 당나라 이후 급격히 보급되어 많은 서가(書家)에 의하여 쓰여졌으며, 그 중에서도 습자교본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왕희지의 7대손 지영(智永)이 진서(眞書:해서(楷書))와 초서(草書)의 두 체로 쓴 『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 본으로 1109년에 새긴 석각(石刻)이 전하고 있다.
송대(宋代) 이후 이용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천자문』의 순서를 이용하여, 문서 등의 번호를 붙이는 습관도 생기고, 또 『속천자문』이 나오는가 하면, 전연 딴 글자를 뽑아, 『서고천자문(敍古千字文)』이라 이름붙인 종류도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1583년 서울에서 간행된 『석봉천자문』이 간행되었으며, 18세기에 들어 『주해천자문(註解千字文)』이 새로 간행되었다. 『광주판천자문』이나 『석봉천자문』은 한자 하나에 하나의 석음만 달았는데, 이 책은 둘 또는 세 석음을 단 경우가 많이 있으며, 이에 더하여 간단한 주석과 함께 250구에 대하여 통해(通解)를 베푼 점이 다르다. 『주해천자문』은 1752년 홍성원(洪聖源)이 편찬하였다.
1804년 방각본(坊刻本)으로 간행한 책도 있는데, 이것은 신증본(新增本)이다. 이 밖에 그 현존본이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황윤석(黃胤錫)의 저서 『이재유고(頤齋遺稿)』에 『영남인본천자문(嶺南印本千字文)』이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서지 사항
『천자문』은 중앙에서도 여러 번 중간되었고, 여러 가지 방각본들도 존재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1650년판 경인 중보본, 단국대학교 국문과 소장의 1661년 칠장사본,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의 1691년판 신미 중간본, 규장각 도서 등에 소장되어 있는 1814년판 갑술 중간본, 일본 궁내청 서릉부본(18세기 말~19세기 초 추정) 등 수많은 이본들이 존재한다.
위에 언급한 것 외에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의 완산본(1915년), 학고당본(20세기 초), 박문서관본(20세기 초), 오세창본(20세기 초) 등 20세기 초반의 자료들도 다수 전한다.
박찬성 소장본은 1982년 『서지학』 제7호에, 오히가시하야루기념문고(大東急紀念文庫) 소장본은 『조선학보』93에, 『광주판천자문』과 나이카쿠문고 소장본, 홍성원의 『주해천자문』은 1973년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에서 각각 영인되었다. 고려대 소장의 신미 중간본은 『한자 자석 연구』의 부록에 실렸고, 일본 궁내청서릉부본은 『조선학보』 98호에 실려 있다.
구성/내용
『천자문』은 한자교육의 기본교재로서도 그 역사적 가치가 적다고 할 수 없지만, 오늘날 이들의 가치는 주로 국어의 역사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천자문』은 우리나라 한자어의 새김을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광주판천자문』과 오히가시하야루기념문고 소장본은 16세기에 호남지방에서 행하여진 새김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 중에는 다른 어느 자료에서도 볼 수 없는 새김이 여럿 포함이 되어 있다. 이 책들의 새김은 『훈몽자회(訓蒙字會)』의 새김보다 전반적으로 예스러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고대의 전통이 이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석봉천자문』의 원간본과 여러 중간본 및 『주해천자문』 등을 비교해 보면, 새김이 역사적으로 새롭게 바꾸어〔改新〕 온 경로를 더듬어 볼 수 있다. 이 여러 책들에 한자음의 차이가 나타나는 점도 특히 주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천자문』이 한자(漢字)를 배우는 입문서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리하여 이 책에 ‘天 하늘 텬’과 같이 새김(뜻)과 음을 달아 읽게 되었고, 이 석음(釋音)을 단 책이 간행되었다. 지금까지 석음이 있는 『천자문』으로 알려진 가장 오랜 책은 1575년(선조 8) 광주(光州)에서 간행된 것이다. 맨 끝에 ‘만력삼년월일 광주간상(萬曆三年月日光州刊上)’이라는 간기가 있는 책으로, 현재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중앙도서관 소장본이 알려져 있는데, 『광주판 천자문』이라 한다.
이와 비슷한 책이 일본의 오히가시하야루기념문고(大東急紀念文庫)에 소장되어 있음이 최근에 밝혀졌다. 이 책에는 간기가 없어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위에서 말한 『광주판천자문』보다 조금 뒤에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천자문』은 명필 한호(韓濩, 호는 석봉(石峯))의 글씨로 1583년 서울에서 간행된 『석봉천자문』이다. 현재 전하는 책들 중에서 경상북도 영주의 박찬성(朴贊成) 소장본과 일본 나이카쿠문고(內閣文庫) 소장본이 원간본 또는 이에 가까운 책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봉천자문』은 임진왜란 뒤에도 여러 차례 중간되어, 우리나라에서 『천자문』이라면, 이 책을 연상하리만큼 일반화되었다.
참고문헌
- 藤本幸夫, 「조선판 천자문의 계통」, 『조선학보』 94, 동경: 조선학회, 1981.
- 박이정, 『천자문 자료집』, 박이정, 1995.
- 손희하, 「새김 어휘 연구」, 전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1.
- 안병희, 「천자문의 계통」, 『정신문화』 12, 정신문화연구소, 1982.
- 이기문, 「천자문 해제」, 『천자문』,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73.
- 임동석, 「『천자문』의 원류, 내용 및 한국에서의 발전 상황 고찰」, 『중국어문학논집』 제56호, 중국어문학연구회, 2009.
- 조병순, 「원본 석봉천자문에 대하여」, 『서지학』 7, 한국서지학회, 1982.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