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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6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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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왕자사부 |
한글표제 | 왕자사부 |
한자표제 | 王子師傅 |
관련어 | 강학청(講學廳) |
분야 | 왕실/왕실문화 |
유형 | 개념용어 |
집필자 | 정재훈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왕자사부(王子師傅)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영조실록』32년 10월 9일, 『태종실록』12년 8월 12일, 『세종실록』10년 7월 12일 |
조선시대에 왕의 자식인 대군이나 왕자군의 교육을 담당하던 스승.
개설
왕자사부는 조선시대에 왕의 자식 가운데 적자인 대군(大君)과 서자인 왕자군(王子君)의 교육을 담당하였던 강학청(講學廳)의 종9품직 관원이다. 원래 종친부 또는 종학(宗學)에서 이루어지던 왕자에 대한 교육은 강학청이 설치되면서 사부가 전담하였다.
내용 및 특징
왕자사부는 왕의 적자인 대군과 왕의 서자인 왕자군의 교육을 담당한 강학청의 관원을 말한다. 대군과 왕자군, 그리고 왕손은 모두 6세가 되면 스승을 두어 공부하였다. 대군과 왕자군의 교육 기관은 강학청(講學廳)이라고 하고, 왕손의 교육 기관은 교학청(敎學廳)이라고 하였다. 대군과 왕자군의 스승은 사부이고, 왕손의 스승은 교부(敎傅)라 하였다. 모두 종9품의 권설직(權設職)이었고 900일의 임기를 마치면 6품으로 승급되었다. 왕세자의 사부가 정1품, 왕세손의 사부는 종1품, 원자(元子)의 사부는 정2품, 원손(元孫)의 사부는 종2품인 것에 비하면 관직의 등급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세자의 교육 기관인 강학청과 달리 대군과 왕자군의 교육 기관으로써의 강학청은 영조 때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영조실록』32년 10월 9일). 영조는 왕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였는데, 그 하나로 왕자 및 왕손에 대한 교육 제도도 정비하였던 것이다.
대군과 왕자군이 취학할 때가 되면 조정에서는 몸을 삼가고 순정(純正)한 사람을 왕자사부로 뽑는데, 선발은 이조(吏曹)가 담당하였다. 사부가 정해지면 대군이나 왕자군은 왕의 명을 기다려서 상견례(相見禮)를 하였다. 이는 ‘왕자군사부상견의(王子君師傅相見儀)’로써 오례(五禮) 가운데 가례(嘉禮)에 수록되었다. 대군과 왕자군이 사부와 상견례를 한 이후 평소 공부할 때나 접견할 때에도 ‘상시교학의(常時敎學儀)’와 ‘상시접견의(常時接見儀)’의 예를 갖춘 후에 공부하거나 접견하였다.
변천
조선 초에는 대군이나 왕자군에 대한 전담 교육 기관이 설치되지 않았다. 대신 대군을 위해 개별적으로 스승을 두어서 가르치게 한 경우는 있었다(『태종실록』12년 8월 12일). 이후 세종 때에 종학(宗學)을 설치하여 종친 자손의 교육을 주관하게 하였다(『세종실록』10년 7월 12일). 명종 때에도 왕실 자손을 위해 사부를 선발하기도 하였다. 그 후 영조 때에 대군과 왕자군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써 강학청을 설치하였고, 이것이 고종 때까지 지속되었다.
참고문헌
- 『大典會通』
- 『國朝續五禮儀』
- 『敎學定例』
- 『增補文獻備考』
- 육수화, 『조선시대 왕실 교육』, 민속원, 2008.
- 정재훈, 「세종의 왕자 교육」, 『한국사상과 문화』3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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