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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용어|대표표제=영패|한글표제=영패|한자표제=令牌|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부절(符節), 나무패|분야=정치/군사·국방/통신|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노영구|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8183|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oa_11102001_002 『광해군일기』 11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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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용어|대표표제=영패|한글표제=영패|한자표제=令牌|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대리청정(代理聽政), 명패(命牌), 왕세자(王世子), 주패(朱牌), 청패(靑牌)|분야=정치/행정/문서·행정용어|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조선|집필자=조미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990|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sa_14308002_001 『숙종실록』 43년 8월 2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2501023_002 『영조실록』 25년 1월 23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5112008_003 『영조실록』 51년 12월 8일], [http://sillok.history.go.kr/id/kwa_12702009_007 『순조실록』 27년 2월 9일]}}
  
군중(軍中)에서 명령을 전달할 때 사용하던 나무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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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왕세자가 신하를 부를 때 사용하던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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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군중에서 명령을 전달할 사용하기 위해 만든 둥근 모양의 작은 나무패로 붉게 기름을 먹여 제작하였다. 각 영()에서는 영표를 10개씩 마련하였다. 이전에는 옥()을 부절(符節)로 만들었는데 문자를 전각하여 반으로 나누어 각각 반쪽씩 보관하고 있다가 일이 있으면 좌우의 것을 서로 맞추어 대조하였다. 이후 송나라 진종대에 이르러 새로 옻칠한 나무로 패를 만들어 군중에서 명령을 전달할 때 사용하게 한 것이 영표의 시작이다. 명령 전달 이외에 영내(營內) 출입을 허락받는 경우에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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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패(令牌)는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행하는 왕세자가 신하를 부를 사용하던 표신(標信)이다. 숙종대에 왕세자가 대리청정을 행하게 되면서 왕이 사용하는 명패(命牌) 대신 분패(粉牌)에 ‘영()’ 자를 새겨서 왕세자가 신하를 부를 때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후 영조대부터는 영패(令牌)를 청패(靑牌)사용하였다.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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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및 특징'''==
  
都元帥姜弘立馳啓 劉都督送經略令箭 發令牌于喬遊擊 以羽書飛傳臣處 使之督發炮手五千名([http://sillok.history.go.kr/id/koa_11102001_002 『광해군일기』 11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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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패는 왕세자가 대리청정을 행하던 시기에 신하를 패초(牌招)할 때 사용하던 것이다. 왕의 경우에는 신하를 패초할 때 명패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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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패에 관한 규정은 숙종대에 왕세자인 경종의 대리청정을 시행할 때 마련되었다. 당시 승정원에서 동궁(東宮)이 패초할 때 왕의 명패를 그대로 사용할지 아니면 분패에 ‘영’ 자를 새겨서 써야 할지에 대해 아뢰었고, 이에 대해 숙종은 분패에 ‘영’ 자를 새겨서 사용하도록 하라고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sa_14308002_001 『숙종실록』 43년 8월 2일]). 이후 영조대 왕세자인 사도세자와 왕세손인 정조, 순조대의 왕세자인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할 때에는 영패를 청패로 사용한다고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2501023_002 『영조실록』 25년 1월 23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5112008_003 『영조실록』 51년 12월 8일]), ([http://sillok.history.go.kr/id/kwa_12702009_007 『순조실록』 27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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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경우에는 ‘명(命)’ 자가 새겨진 패를 사용하되 글자의 색을 붉게 칠하여 사용하였고, 왕세자의 경우에는 ‘영’ 자를 새기되 글자 색을 푸른색으로 칠하여 사용하였다. 따라서 왕이 관원을 패초할 때 사용하는 명패는 주패(朱牌)이고 왕세자가 대리청정할 때에 사용하는 영패는 청패이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병학지남(兵學指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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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병학지남주해(兵學指南註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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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은, 「조선시대 왕세자 대리청정기 문서 연구」, 『고문서연구』 36 , 2010.      
*『속잡록(續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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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은, 「조선시대 왕세자문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관계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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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3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에 왕세자가 신하를 부를 때 사용하던 패.

개설

영패(令牌)는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행하는 왕세자가 신하를 부를 때 사용하던 표신(標信)이다. 숙종대에 왕세자가 대리청정을 행하게 되면서 왕이 사용하는 명패(命牌) 대신 분패(粉牌)에 ‘영(令)’ 자를 새겨서 왕세자가 신하를 부를 때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후 영조대부터는 영패(令牌)를 청패(靑牌)로 사용하였다.

내용 및 특징

영패는 왕세자가 대리청정을 행하던 시기에 신하를 패초(牌招)할 때 사용하던 것이다. 왕의 경우에는 신하를 패초할 때 명패를 사용하였다.

영패에 관한 규정은 숙종대에 왕세자인 경종의 대리청정을 시행할 때 마련되었다. 당시 승정원에서 동궁(東宮)이 패초할 때 왕의 명패를 그대로 사용할지 아니면 분패에 ‘영’ 자를 새겨서 써야 할지에 대해 아뢰었고, 이에 대해 숙종은 분패에 ‘영’ 자를 새겨서 사용하도록 하라고 하였다(『숙종실록』 43년 8월 2일). 이후 영조대 왕세자인 사도세자와 왕세손인 정조, 순조대의 왕세자인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할 때에는 영패를 청패로 사용한다고 하였다(『영조실록』 25년 1월 23일), (『영조실록』 51년 12월 8일), (『순조실록』 27년 2월 9일).

왕의 경우에는 ‘명(命)’ 자가 새겨진 패를 사용하되 글자의 색을 붉게 칠하여 사용하였고, 왕세자의 경우에는 ‘영’ 자를 새기되 글자 색을 푸른색으로 칠하여 사용하였다. 따라서 왕이 관원을 패초할 때 사용하는 명패는 주패(朱牌)이고 왕세자가 대리청정할 때에 사용하는 영패는 청패이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조미은, 「조선시대 왕세자 대리청정기 문서 연구」, 『고문서연구』 36 , 2010.
  • 조미은, 「조선시대 왕세자문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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