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주인(旅客主人)"의 두 판 사이의 차이
(XML 가져오기) |
(차이 없음)
|
2017년 12월 10일 (일) 02:32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여객주인 |
한글표제 | 여객주인 |
한자표제 | 旅客主人 |
상위어 | 중간상인(中間商人) |
동의어 | 여각(旅閣), 객주(客主), 선주인(船主人), 강주인(江主人) |
관련어 | 사상도고(私商都賈) |
분야 | 경제/재정/공물·진상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욱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여객주인(旅客主人)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15년 1월 22일 |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한편, 상인 간의 거래를 주선하던 중간상인.
개설
여객주인은 사상도고(私商都賈)를 대표하는 상인 중 하나로서,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그들의 물품을 보관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다른 상인의 거래를 주선해 주기도 하였다. 초기에는 상인과 여객주인의 관계에서 여객주인은 그다지 우위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여객주인을 통한 상품유통이 일반화되면서 상인은 여객주인에게 예속되어 갔다. 이에 따라 여객주인은 권력과 유착하며 자신의 독점 권한을 더욱 확장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전기의 주인(主人)층은 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경주인(京主人)과 사적으로 영업하는 사주인(私主人)으로 구분되었다. 공물의 방납(防納)이 성행했던 시기에 성장하였던 사주인은 대동법의 실시와 더불어 점차 쇠퇴하였다. 이들이 담당했던 기능들은 조선후기에 공물주인(貢物主人)·세곡주인(稅穀主人)·선주인(船主人)·여객주인 등으로 분화되어 갔다.
주인 영업이 처음부터 세곡주인·강주인·여객주인 등으로 구분되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기능이 분화되기 이전에는 선인(船人)이나 선상(船商)을 접대하는 것이 주된 영업이었다는 점에서, 주인이 접대하는 대상에 따라 명칭이 정해지기보다는 영업이 행해지는 장소에 따라 경강주인·강주인·포구주인·진주인(津主人) 등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포구 상업의 발달에 따라 한강 일대의 경강(京江)을 오가는 선인들이 세곡 운송 선인, 일반 선박의 사공·격군(格軍)·선상·여객상고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이에 따라 주인 영업도 분화된 것이었다. 선주인은 선척의 주인이었고, 여객주인은 여객상고의 주인으로, 엄밀히 따지면 다른 영업체였기 때문에 주인권(主人權)을 팔 때에도 여객주인과 선주인 역을 따로 명시하였다.
여객주인의 주요한 영업 내용인 여객상고의 접대와 매매 중개업은 처음에는 분리되어 있었다. 선주인인 점주는 여객을 접대하는 대가로 약간의 금품을 받을 뿐이며, 구문은 상품유통을 매개하는 거간이 차지하였다. 이처럼 주인층과 거간이 각각 기능적으로 독립된 영업체이긴 하였으나, 두 영업을 한 사람이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여객주인의 영업 내용은 이와 같이 거간과 선주인 영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를 감안할 때 여객주인업의 기원은 종전 선인에 대한 접대만을 담당했던 선주인들이 상품거래를 중개하는 거간업까지 영업 내용을 확장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선주인들이 거간업까지 겸하면서 여객주인으로 불리는 시기는 17세기 중엽으로 추정되었다.
여객주인은 선상에게 자금을 제공하여 선상의 물품에 대한 판매 권한인 주인권을 획득하였다. 선상들은 자금 부족이나 부채를 갚기 위하여 자신을 여객주인에게 판매하였기 때문에 주인-객상(客商) 관계가 성립하였다(『정조실록』 15년 1월 22일). 그리고 이러한 객상을 여객상고라고 하였다. 선상이 여객주인에게 자신을 여객상고로 판매하는 가격은 대체로 50냥 내외였으며, 이로써 성립한 주인-객상 관계는 판매한 여객상고 자신은 물론 후손에까지 미치는 것이었다.
초기의 여객주인권은 관권(官權)과 전혀 관계없이 전적으로 여객상고와 여객주인 사이의 개별 계약을 통하여 발생하였다. 특히 초기 객상-주인 관계는 여객상고의 필요, 즉 궁가(宮家)나 재상가에 대한 채무를 갚고 궁가·재상가의 침학을 방지하기 위하여 성립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17세기 중엽까지는 이러한 필요가 없는 선상들은 굳이 여객주인을 정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여객주인과 여객상고의 관계가 강한 예속성을 띠지 않고 주인을 정하지 않은 선상들이 많았을 때는 여객주인의 신분이 낮았고 경제적으로도 가난한 자들이 많았다.
변천
18세기 이후 상품화폐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여객주인과 상인 간의 관계가 점차 고정되고 하나의 권리로 정착되었다. 선상들은 자금 부족을 충당하거나 부채를 갚기 위하여 자신을 여객주인에게 판매하였으며, 판매한 상인뿐만 아니라 그 후손도 여객주인에게 예속되었다. 이처럼 여객주인권은 상인과 주인 사이에 개별적인 계약을 통해 성립하였다. 이는 곧 주인권이 경제적 권리로 성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여객주인권은 매매·상속·양도가 자유로운 재산권이었고, 법적으로 보호를 받았다. 만약 상인이 자기의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상품 판매를 위탁할 경우 그 상인은 ‘노비가 주인을 배반했을 때의 벌’을 적용하여 처벌을 받았다.
점차 포구에서 여객주인이 없으면 매매가 곤란할 정도로, 여객주인은 상품유통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에 따라 여객주인의 상인에 대한 지배권도 점차 강화되었다. 상인은 시세와 상관없이 반드시 주인을 통하여 매매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한편 18세기 중엽 여객주인이 필수적인 존재가 되면서 여객주인권도 개별 상인과 주인 사이에 성립하던 것에서 점차 1개 군현이나 면 전체의 상인을 대상으로 주인권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변하였다. 한 지역 전체의 선상과 선인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지역주인권이 성립한 것이었다.
이처럼 여객주인의 경제적 권리가 확대되면서 18세기 말, 19세기 초를 기점으로 주인권이 질적으로 변화하였다. 이전까지 경강주인(京江主人)은 주로 준양반과 양인이었으나 이후 부민(富民)·양반관료·궁방(宮房)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외방주인(外方主人)은 이전까지 대개 호민(豪民)이었으나 이후 중앙의 양반관료나 궁방·아문과 결탁한 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여객주인은 이러한 권력과의 결탁을 공고히 하는 한편 상인들이 싣고 온 상품에 대한 독점을 기초로 가격을 조종하는 도고상인(都庫商人)으로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아래와 같은 유통 구조가 확립되었다.
여객주인을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유통 체계는 정상적인 상품-화폐 관계의 발전을 왜곡시키는 것이었다. 주인층의 유통 참여 방식이 권력기관에 의존한 폭력적 수탈의 성격을 띠었고, 상업 세력은 더욱 권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여객주인은 독점 지향성과 특권 지향성을 갖는 존재였다. 독점성은 유통 과정상의 독점성, 포구 내의 지역별·상품별 전관제(專管制), 권력기관의 보호로 유지되며, 특권성은 독점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개항 이후 여객주인의 전망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었다. 하나는 여객주인의 독점과 특권이 개항 이후 매판(買辦)의 실마리가 된다고 보는 견해였다. 이와 달리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즉, 개항을 계기로 물품의 종류별 주인권이 성립하였고, 이는 상품유통의 기구로서 주인권의 전문성이 강화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전의 전근대적이고 폭력적인 독점의 형태가 해소될 전망을 보여 준다고 하였다. 즉, 여객주인의 독점이 점차 해소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았다.
참고문헌
- 고동환, 『조선 후기 서울 상업 발달사 연구』, 지식산업사, 1998.
- 고동환, 「18·19세기 외방포구의 상품 유통 발달」, 『한국사론』 13, 1985.
- 이병천, 「조선 후기 상품 유통과 여객주인」, 『경제사학』 6, 1983.
- 이영호, 「19세기 은진 강경포의 상품 유통 구조」, 『한국사론』 15, 1986.
- 이영호, 「19세기 포구 수세의 유형과 포구 유통의 성격」, 『한국학보』 41,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