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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2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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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역과 |
한글표제 | 역과 |
한자표제 | 譯科 |
상위어 | 잡과(雜科) |
관련어 | 한학(漢學), 여진학(女眞學), 몽학(蒙學), 왜학(倭學), 청학(淸學), 역관(譯官) |
분야 | 정치/인사/선발 |
유형 | 개념용어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이남희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역과(譯科)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19년 11월 27일 |
조선시대에 역관을 선발하는 과거 시험.
개설
역과(譯科)는 잡과의 하나로 역과 전공에는 한어(漢語)·몽어(蒙語)·왜어(倭語)·여진어(女眞語)가 있었다. 여진어는 1667년(현종 8)에 청어(淸語)로 개칭되었다. 식년시와 증광시 합격 정원은 19명으로 동일하였으며, 대증광시 정원은 21명이었다.
내용 및 특징
역과에는 한학·몽학·왜학·여진학[청학] 등 4개 전공이 있었으며, 한학이 가장 중시되었다. 여진학은 1667년에 청학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에서는 대명외교의 중요성 때문에 건국 직후부터 한학 교육을 실시하였으나, 몽학은 1419년(세종 1), 왜학은 1441년(세종 23), 여진학은 1451년(문종 1)부터 실시하였다. 왜학 전공자가 유구어를 같이 익히기도 하였다(『세종실록』 19년 11월 27일).
역과는 문과나 무과와 달리 대소과의 구별이 없는 단일과로서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실시하였으며, 초시·복시 2단계만 있고 전시(殿試)는 없었다. 초시는 자(子)·오(午)·묘(卯)·유(酉)의 식년 전해 가을에 사역원(司譯院)의 주관 아래 실시하였고, 복시는 식년 봄에 사역원 제조와 예조당상관의 주관 아래 실시하였다. 초시에 향시(鄕試)가 있는 것은 한학뿐이며, 역학원이 있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관찰사가 실시하였다.
합격자 정원은 초시에서는 사역원시 23명, 황해도 향시 7명, 평안도 향시 15명인 한어 45명, 몽어·왜어·여진어 각 4명으로 총 57명이었다. 최종 선발 시험인 복시에서는 한어 13명, 몽어·왜어·여진어 각 2명으로 총 19명이었다. 식년시와 증광시가 동일하였다. 국가에 경사가 겹쳤을 때 특별히 실시하는 대증광시에서는 초시에 각 전공별로 4명, 복시에 각 전공별로 2명씩을 더 선발하였다. 시험 과목은 전문서·경서·『경국대전』이며, 초시와 복시가 동일하였다. 시험 방법은 한어는 역학서와 사서(四書)의 강서(講書)와 『경국대전』의 번역이며, 몽어·왜어·여진어는 역학서와 경서의 사자(寫字)와 『경국대전』을 번역하는 시험을 치렀다.
시험 방법은 강서(講書)·사자·역어로 구분하였다. 사서는 임문고강(臨文考講)하게 하고, 『노걸대』·『박통사』·『직해소학』은 배송(背誦)하였다. 역어는 한학·몽학·왜학·여진학은 모두 임문으로 『경국대전』을 번역하게 하였다. 각 과목은 통(通)·약(略)·조(粗)로 채점하는데 통은 2분(分), 약은 1분, 조는 반분으로 계산하여 분수가 많은 사람을 선발하였다. 합격자에게는 예조인(禮曹印)을 찍은 백패(白牌)를 주었다. 합격 등수에 따라 7품~9품의 관품을 주고 임시 관직인 사역원 권지(權知)로 임명하였다. 1등은 종7품계, 2등은 종8품계, 3등은 종9품계를 주고, 이미 품계를 가진 사람은 1계를 더 올려 주고, 올린 품계가 마땅히 받아야 할 품계와 같을 때에는 다시 1계를 올려 주었다.
변천
역과 시험 과목은 『속대전』에서 변경되었다. 중국어 학습서인 『오륜전비(五倫全備)』를 추가하고 『직해소학』은 폐지하였다. 『대전통편』에서는 우리말로 풀이한 중국어 단어 책 『역어유해(譯語類解)』를 추가하고 『오륜전비』는 폐지하였다. 몽학·왜학·여진학 사자 시험 과목도 축소되었다. 몽학은 『속대전』에서 『노걸대』·『첩해몽어』만 남기고 나머지는 폐지하였고, 『대전통편』에서 몽고어 학습서 『몽어유해(蒙語類解)』를 추가하였다. 왜학은 『속대전』에서 『첩해신어(捷解新語)』 외에 나머지는 폐지하였다. 여진학은 『속대전』에서 『팔세아』·『소아론』·『노걸대』·『삼역총해』로 하고 나머지는 폐지하였다. 『대전통편』에서는 잡과의 첫째 자리가 역과에서 음양과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통문관지(通文館志)』
- 『역과방목(譯科榜目)』
- 이남희, 『조선후기 잡과중인 연구』, 이회문화사, 1999.
- 송기중, 「『경국대전』에 보이는 역학서 서명에 대하여」, 『국어학』 14, 1985.
- 원영환, 「조선시대의 사역원제도」, 『남계조좌호박사 화갑기념사학논총』, 1977.
- 이남희, 「조선중기 역과입격자의 신분에 관한 연구」, 『청계사학』 4, 1987.
- 이남희, 「조선후기 잡과교육의 변화와 특성」,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13-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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