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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1 기준 최신판



서앙(徐昻)이 편찬하여 822년(당 목종 2)에 반포된 이래 당말 892년(당 소종 1)까지 사용된 역법.

개설

당나라 290년간 15종의 역법이 만들어졌으나 실제 행용된 것은 9종에 이르는데, 그중 당나라 후기에 만들어진 선명력(宣明曆)은 일행(一行)의 대연력(大衍曆) 이후 가장 개량된 역법으로 특히 일월식 계산에 새로운 이론을 도입한 우수한 역법으로 평가되었다. 헌종이 즉위하던 해인 806년에 관상력(觀象曆)이라 제명한 신력(新曆)을 헌상하여 15년간 행용케 한 바 있던 서앙은 기존 대연력의 계산법을 거의 습용하던 관상력이 관측에 부합하지 않는 한계를 보면서 역법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에 구루법(晷漏法)과 교회법(交會法) 등을 좀 더 정밀히 개선시킨 선명력을 재차 칙찬으로 찬진하였던 것이다.

내용 및 특징

선명력은 평기법(平氣法)과 정삭법(正朔法)을 채택하였고, 1일은 통법(統法) 8,400분, 1삭망월은 248,057분(=29.530595일), 1회귀년은 3,068,055분(=365.2446일)으로 측산하였다. 선명력이 보인 특장점은 일월식 추산 시 태양 시차의 계산법을 개량한 것인데, 처음으로 시차(時差)와 기차(氣差), 각차(刻差) 및 가차(加差)라는 사차(四差)를 보정함으로써 시차(視差)의 영향을 거의 보완할 수 있도록 하였고, 태양의 영축(盈縮) 운동과 태음의 지질(遲疾) 운동에 따른 부등속 간격에 대한 보간법으로, 가우스의 내삽공식과 유사한 2차 함수식 근사값을 구하는 법인 내삽법을 개발하였다. 이런 점 때문에 일월식 계산은 중국류 고역법 중에서 가장 우량한 것으로 평가되었고, 고려말 수시력 도입 이후에도 일월식 계산법은 여전히 선명력을 사용하였다 할 정도로 그 우수성이 지속되었다.

우리나라에 『선명력』이 언제 도입되었는지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증보문헌비고』「상위고」 등에서는 고려 태조 때에 당의 선명력을 신라로부터 이어받아 사용하였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나당 교류 관계상 당나라가 선명력을 반포하던 822년(신라 헌덕왕 14) 무렵에는 곧바로 수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는 918년 태조 건국 이래 1281년(충렬왕 7) 정월 『수시력』을 하사받기 전까지 계속 사용하였으며, 정인지(鄭麟趾)가 편찬한 『고려사(高麗史)』 「역지(曆志)」의 서문을 보면, 『수시력』에서 사용한 제곱근 계산법인 개방법(開方法)이 전해지지 않아 일식과 월식의 이론을 서술한 교식(交食) 1절만은 여전히 『선명력』의 옛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 보면 『선명력』의 일월식 교회술은 한반도에서 신라 말 이래로 무려 약 570년간 사용한 정도가 된다.

참고문헌

  • 김일권, 『동양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즈윈, 2008.
  • 김일권, 『국역고려사』, 동아대학교 石堂學術院, 경인문화사, 2011.
  • 陳美東, 『中國科學技術史』 , 天文學券, 科學出版社, 2003.
  • 陳遵嬀, 『中國天文學史』上中下 , 上海人民出版社,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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