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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9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에 땀을 흘린 불상이 있던 담양 금성산성 안의 사찰로, 현재는 폐사됨.

개설

담양 금성산성(金城山城) 안에 있던 보국사(輔國寺)는 현재 터만 남아 있다. 이 사찰의 창건과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으나, 산성 내에 있던 사찰이므로 승병들이 산성을 수비하며 거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662년(현종 3)에 보국사의 금불(金佛) 3구에서 땀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는 축대와 괘불대, 그리고 와편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내용 및 특징

『조선왕조실록』에는 ‘보국사(輔國寺)’ 또는 ‘보국사(寶國寺)’로 한자를 달리 표기하고 있지만, 이는 같은 사찰을 다르게 표기한 것이다.

보국사의 창건과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으나, 산성 내에 있던 사찰이므로 승병들이 산성을 수축하거나 수비하며 거처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보국사는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와 19세기에 만들어진 『대동지지(大東地志)』, 『호남진지(湖南鎭誌)』, 『담양읍지(潭陽邑誌)』 등에는 금성사(金城寺)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19세기까지 사세(寺勢)가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축대와 괘불대, 그리고 와편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1662년(현종 3)에는 전라감사이태연(李泰淵)이 보국사의 금불 3구에서 저절로 땀이 나왔다고 보고한 바 있다(『현종실록』 3년 1월 4일).

참고문헌

  • 불교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사지 – 전라남도 1 上』, 문화재청,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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