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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중부에 있던 고대 왕국인 코살라국의 수도.

개설

사위국(舍衛國)은 코살라국의 수도로, 석가모니가 가장 오래 머물며 설법을 베푼 기원정사(祇園精舍)가 성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인도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상업이 발달했던 이곳은 석가모니가 세상을 있을 당시 북인도에서 가장 번성한 곳이었다. 불교의 쇠퇴와 더불어 5세기에는 200여 가구만 남게 되었지만, 7세기에는 인근에 100여 곳의 사찰과 약 10,000명에 이르는 승려들이 있었다고 한다.

내용 및 특징

사위는 산스크리트어 ‘슈라바스티(Śrāvastī)’의 음역어로, 코살라국의 수도인 사위성(舍衛城)을 가리킨다. 코살라국은 오늘날의 인도 라프티강 남쪽에 위치하였으며,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상업이 발달했다고 한다. 이 나라의 수도인 사위성은 지금의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발람푸르 서북쪽 약 19㎞ 지점에 있었다. 성의 남쪽에는 기원정사가 있었는데, 석가모니가 이곳에서 25년간 머물며 법을 설하였기 때문에 불교 경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설법처이다. 그 당시 코살라국은 파사익왕(波斯匿王)이 통치하고 있었다.

5세기 초에 사위성을 방문한 중국 동진의 승려 법현(法顯)은 『고승법현전』에서, 이곳에 200가구 남짓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그에 비해 7세기에 인도를 순례한 당나라 승려 현장(玄奘)은 코살라국의 둘레가 6,000여 리에 이르며, 큰 도성의 둘레는 40여 리에 달한다고 하였다. 또한 100여 곳의 사찰에 약 10,000명의 승려들이 있다고 말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위국이 한 차례 나온다. 1405년(태종 5)에 의정부에서 불교의 퇴폐상을 열거하며 금산사 등의 토지와 노비를 환수할 것을 청하였는데, 그 상서(上書)에 "석가가 처음에 출가하여 설산(雪山) 가운데 들어가 고행한 지 6년 만에 그 도를 이루고, 사위국에 이르러 바리[鉢]를 가지고 성에 들어가 걸식하였다."는 구절이 등장한다(『태종실록』 5년 11월 21일).

참고문헌

  • 김영률 번역,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 동국역경원, 2009.
  • 이재창 번역, 『고승법현전』, 동국역경원, 2010.
  • 中村元·奈良康明·佐藤良純 [共]著, 김지견 역, 『불타의 세계』, 김영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