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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5 기준 최신판



조선전기에 함경도 회령 남쪽에 있는 보을하에 설치한 보.

내용

함경도, 평안도 등 양계 지역의 전방 최전선에는 구자(口子)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구자에 설치된 성곽 시설을 보(堡)라 하였는데, 구자가 대부분 성곽을 갖춘 뒤로는 흔히 구자 대신 보(堡)라고 불렀다. 양계 지역의 보(堡)는 고려 말부터 설치되었으나 세종대에 사군(四郡)과 육진(六鎭) 개척을 추진하면서부터 국방 전진기지로서 더욱 중요시되었다. 함경도 회령(會寧) 남쪽 20리 부근에 위치한 보을하(甫乙下)에 보(堡)가 설치된 것은 육진을 설치하기 시작한 1433년(세종 15) 무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460년(세조 6)에 혁파되었는데, 1508년(중종 3)에 함경도관찰사고형산(高荊山)이 보을하보를 다시 설치하자고 건의하여 복구되었다.

용례

今考六鎭之設 歲在癸丑 設會寧鎭于斡木河 又其南二十里之地 置甫乙下堡 以爲援鎭 又其南至富寧鎭境二十里之間 置烟臺二處 所行之路 所耕之田 皆在內地 俾無守護之弊 其古人設鎭之計 眞得其要 非後人之所能改矣 後至庚辰之歲 謀臣獻議 革罷甫乙下之堡 縮排于豐山內地 遂使祖宗開拓之地 變爲彼人所居之里(『중종실록』 3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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