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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4 기준 최신판



허견과 복선군의 역모를 평정한 공로로 숙종대에 책봉된 공신.

내용

1680년(숙종 6) 남인인 허견·복선군 등이 역모를 도모한다는 서인인 김석주의 고변으로부터 시작된 옥사를 마친 후 이루어진 공신책봉이었다. 이를 계기로 남인에서 서인이 정권이 바뀌었다. 대출척 직후인 5월에 허견과 복선군의 역모를 평정한 공로로 보사공신 6명이 책봉되었다. 1등은 분충효의병기협모보사공신(奮忠效義炳幾協謨保社功臣)이라 하였는데 김석주·김만기 등 2명이었다. 분충효의병기보사공신(奮忠效義炳幾保社功臣)이라 불린 2등은 이입신 1명이었으며, 분충효의보사공신(奮忠效義保社功臣)이라 불린 3등은 남두북·정원로·박빈 등 3명이었다. 그러나 보사공신은 숙종대에 서인과 남인 사이에 환국이 발생할 때마다 책봉과 삭제가 반복되었다. 남인이 집권하면 삭제되었다가 서인이 집권하면 다시 책봉되었던 것이다.

용례

奮忠效義炳幾協謨保社功臣 一等金萬基金錫冑 二等李立身 三等南斗北鄭元老朴斌 錫冑加輔國爲淸城府院君 立身加資憲爲陽興君 南斗北爲宜豐君 元老超嘉善爲東原君 朴斌爲密城君(『숙종실록』 6년 5월 18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녹훈도감의궤(錄勳都監儀軌)』
  • 『국조공신록(國朝功臣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신명호, 『조선의 공신들』, 가람기획,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