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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1 기준 최신판



왜관에 거주하는 왜인들이 조선 정부가 정한 규정을 무시하고 무단으로 왜관 밖으로 나가는 행위.

개설

조선과 일본 사이에 외교나 무역과 관련된 일이 있을 때에는 조선이 파견한 왜학역관(훈도·별차)가 왜관 안으로 들어가서 협의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그들의 요구가 훈도나 별차 선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에는 왜관 밖을 뛰쳐나가 동래부로 몰려가서 동래부사를 상태로 일종의 시위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를 ‘난출’이라고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 정부는 왜관에 체제하는 일본인들이 왜관을 벗어나 인근의 마을 등지를 함부로 배회하거나 통행하는 것을 매우 꺼렸기 때문에 왜관의 출입에 대한 규정을 매우 엄격히 하였다. 당시 조선 정부의 방침은 통교업무와 관련하여 왜관에 출입하거나 업무상 일본인들과 접촉하는 조선의 관리나 상인을 제외하고 일반인이 일본인과 접촉하는 것을 최대한 봉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모포왜관에서는 수문(守門) 밖 수십 보의 거리에 좌자천(佐自川)이 있으므로 그 하천으로 한계를 삼았으며, 조선 정부는 왜관 통제강화를 위하여 초량으로 왜관을 이전한 직후인 1679년(숙종 5)에는 왜관의 동서남북에 금표(禁標)를 설정하여 왜관의 일본인들이 통행증 없이 무단으로 경계를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왜관에 초소인 번소(番所)를 안팎 동시에 두었고, 출입문은 수문과 연석문(宴席門)에 한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복병소가 설치되어 경비가 엄격하였다.

1683년(숙종 9) 계해약조에서는 왜관 밖으로 무단으로 나갈 경우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으로 ‘난출’ 문제에 대하여 약조가 정해지고, 그것을 어기면 동래부사가 처벌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선 정부의 방침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왜관의 일본인과 조선인 간에는 다양한 접촉이 이루어졌고, 그러한 접촉이 사건으로 비화되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조선인과 밀무역을 모의하기 위하여 또는 왜관 인근 지역에 있는 온천이나 사찰을 방문하기 위하여 왜관을 이탈하는 개인적인 난출 사례도 있었는데, 조선 정부가 가장 문제시한 것은 왜관 관리들의 의도적인 난출이었다. 대관(代官)이나 재판(裁判) 등 일본 측 관리들이 주도한 난출은 조선의 대일 무역정책이나 외교교섭 등에 물만을 품고 의도적으로 대규모 이탈을 감행하는 예도 적지 않았다. 이런 경우 난출은 조선 정부의 왜관정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 위한 일종의 시위 행위로 조선 측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전술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왜관 거주 일본인들의 왜관무단 이탈은 동래부의 주의를 끌어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한 예를 들면 1652년(효종 3)에는 왜관 개시문제로 옛 규정을 회복하기 위한 논의 중에 대관 3명이 왜인 90명과 함께 왜관을 무단이탈한 것을 비롯하여, 1671년(현종 12)에는 조선이 왜관 이관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판차왜(裁判差倭)가 왜인 200여 명을 이끌고 왜관을 뛰쳐나와 동래부까지 진출하여 난동을 부린 경우, 1697년(숙종 23)에는 대마도의 종(宗, [소우])씨가 조선에 파견한 재판이 왜관 사람들을 이끌고 왜관 밖으로 나간 경우였다.

특히 1697년에는 난출한 왜인이 부산진 앞에서 조선인과 다투었으며, 마침내는 사무라이 하나가 그의 칼을 조선인 농민에게 빼앗기는 소동으로 번졌다. 결국 동래부사는 관수에게 그 주동자의 처벌을 엄하게 요구하였으나 조선 측이 파악하는 한도 내에서는 그 재판은 일본 측으로부터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참고문헌

  • 『변례집요(邊例集要)』
  •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 田代和生, 『倭館-鎖國時代の日本人町』, 文春新書 281, 2002.
  • 장순순, 「조선후기 倭館에서 발생한 朝日 양국인의 물리적 마찰 실태와 처리」, 『한국민족문화』 13,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1999.
  • 제임스 루이스, 「부산 왜관을 중심으로 한 조·일 교류-교간사건에서 나타난 권력·문화의 葛藤-」 『精神文化硏究』 20-1, 1997.
  • 尹裕淑, 「近世癸亥約條の運用實態について ー潛商·闌出事件を中心に-」,『朝鮮學報』 164, 1997.
  • 尹裕淑, 「約條にみる近世の倭館統制について」, 『史觀』 138,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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