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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19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에 국가적인 경사가 있을 때 설행한 비정기 시험.

개설

경과로 설행하는 시험에는 증광시(增廣試)와 정시(庭試), 별시(別試) 등이 있었다. 증광시는 문과와 무과, 생원진사시, 잡과를 함께 설행하지만 별시와 정시는 문과와 무과만 해당되었다. 증광시는 시험 방법이나 선발 인원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별시와 정시는 정해진 규정이 없어 그때그때마다 차이가 있었다.

내용 및 특징

1401년(태종 원년) 왕의 즉위 기념으로 증광시를 시행한 것이 경과의 시작이었다. 즉위 기념으로만 설행되던 증광시가 선조 이후에는 경사의 종류가 다양해지며 자주 설행되었다. 즉위뿐 아니라 즉위 30년이나 40년 또는 50년이 된 것을 큰 경사로 여겼다.

원자·원손의 탄생, 왕세자의 책봉·가례(嘉禮)·입학, 왕이나 왕비·대비·대왕대비의 나이 60 또는 70이 되는 해, 존호를 올리는 일, 선왕의 부묘(祔廟), 위패의 세실(世室) 봉안 등을 경사로 여겼다. 왕이나 왕세자·왕비·대비·대왕대비가 중환에서 회복되었을 때, 역적 토벌 등도 경사로 여겨 경과를 시행하였다.

경사에 따라 설행되는 경과의 종류에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왕의 즉위와 같은 큰 경사는 증광시를, 여러 가지 경사가 합쳐졌을 때는 대증광시를 설행하였다.

왕과 관련된 경사 외의 크고 작은 경사는 증광시 외에 별시, 정시로 설행되었다. 적은 규모의 경사는 전례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가례 후의 경과는 별시를 시행하는 것이 전례였고(『숙종실록』 7년 4월 9일), 1686년(숙종 12)에는 대왕 대비전에 존호를 올린 후에 경과로 정시를 설행하였다(『숙종실록』 12년 7월 23일).

변천

왕의 즉위 기념으로 실시되던 증광시가 선조 이후에 경사의 종류가 다양해졌으며, 여러 가지 경사를 합쳐 증광시를 설행하였다. 조선전기와 달리 조선후기에는 증광시를 비롯한 별시와 정시가 자주 설행되었다. 정시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당락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조선후기로 갈수록 절차와 비용, 운영 면에서 간단한 정시를 자주 열었다.

참고문헌

  • 최진옥, 『조선시대 생원 진사 연구』, 집문당, 1998.
  • 원창애,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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