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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19 기준 최신판



군자의 당이라는 의미로서 당쟁 과정에서 같은 당파성을 가진 동류를 일컫는 말로 주로 사용됨.

개설

중국송나라의 정치가이자 문인인 구양수(歐陽脩)의 붕당론에 의하면 공적인 도를 실현하고자 하는 붕당을 군자당,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붕당을 소인당이라고 했다. 따라서 구양수는 군자당이 집권하면 정치는 저절로 바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주자성리학의 창시자인 주희(朱熹) 또한 황제는 붕당이 있는 것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그 붕당이 군자당이라면 황제라도 여기에 가담해야 한다고 하였다. 군자당과 소인당이라는 말은 구법당과 신법당이 대립하던 때 등장하였으며, 이것은 주자성리학적 인간관과 결합하면서 이후 널리 확산되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에서는 16세기 이후 사림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주자성리학이 확산되면서 군자당이라는 말도 동시에 확산되었다. 사림들은 붕당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는 이를 적극 자신들의 정치이념 실현에 이용하였다. 이이(李珥)는 주희의 붕당론을 계승하여 붕당을 배척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끌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서인으로 자처하기도 하였고, 이 시기 붕당정치는 특수한 정치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각 붕당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양상은 변화하였다. 모두가 자신의 붕당은 군자당으로 일컫고, 상대방의 붕당은 소인당으로 배척하면서 군자당은 군자들의 붕당이라는 의미보다는 뜻을 함께하는 무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변천

사림의 붕당정치는 원래는 올바른 공론을 형성하여 공적인 정치를 구현하고자 하였으나, 이후 군자당, 소인당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정파싸움 양상을 띠면서 본래의 의도를 잃고 말았다. 상대 당을 소인당으로 치부하는 순간, 상대 당을 정치적인 협력자로서 인정하지 않게 되고 이는 붕당정치의 긍정적인 기능들이 종결됨을 의미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이는 서인이라고 해서 모두 군자는 아니며 동인이라고 해서 모두 소인이 아니라고 하면서 군자론과 소인론을 조정하고자 하였다(『선조실록』 16년 10월 22일). 하지만 군자론과 소인론은 계속해서 조선 정치사에 중요한 화두가 되었으며, 이후에는 충역론(忠逆論)과 연결되어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변화되었다(『영조실록』 20년 10월 17일). 또한 주자성리학의 심성론, 인간관과 결합하면서 그 사회적, 정치적 의미는 더욱 확대되었다.

참고문헌

  • 박현모, 「한국의 정쟁(政爭), 그 역사적 고찰」, 『철학과 현실』통권 제61호, 2004.
  • 신항수, 「사실 이렇게 본다-당쟁」, 『내일을 여는 역사』1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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