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흥현(義興縣)"의 두 판 사이의 차이
(XML 가져오기) |
(차이 없음)
|
2017년 12월 10일 (일) 02:06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의흥현 |
한글표제 | 의흥현 |
한자표제 | 義興縣 |
관련어 | 귀산(龜山), 귀성(龜城)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고려~조선 |
왕대 | 고려~조선 |
집필자 | 정요근 |
폐지 시기 | 1914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의흥현(義興縣)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
현재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의흥현(義興縣)은 고려초기에 설치된 고을이다. 고려시대에는 의흥군으로 불렸으며, 1018년(고려 현종 9)에 안동부(安東府)의 소속이 되었다. 이후 의흥현으로 개칭되었고,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부계현(缶溪縣)을 합병하였다. 의흥현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현감(縣監)이 파견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의흥군이 되었으나, 1914년에 경상북도 군위군에 병합되었다. 조선시대에 의흥현은 현재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의흥현은 고려시대에는 의흥군이라고 불렸다. 1018년에 안동부의 소속이 되었는데, 그 이전의 연혁은 알 수 없다. 이후 의흥군은 의흥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말기인 1390년에 감무가 처음으로 파견되어 선주(善州: 현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일대)의 속현(屬縣)이었던 부계현을 병합하였다. 『고려사(高麗史)』「지리지」에 의하면 부계현의 영역은 이후 의성현(義城縣)으로 이속된 것으로 기재되었으나, 조선전기의 자료인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그 내용이 실리지 않은 채 부계가 의흥현 소속인 것으로 기록되었다. 아마도 여말선초에 부계 지역이 잠시 의성에 이속된 적이 있었거나, 아니면 『고려사』의 기록 오류인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 건국 후에도 의흥현은 그대로 이어졌으며, 1413년(태종 13)에 감무가 현감으로 개칭되었다.
조직 및 역할
의흥현은 고려시대에 의흥군으로 불렸으며, 안동부의 소속이었다. 따라서 의흥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다. 그 대신 의흥에는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의흥군은 의흥현으로 개칭되었고, 1390년에 의흥현에는 지방관인 감무가 파견되었다. 의흥현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으며, 1413년에 감무는 현감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의흥현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의흥현에는 종6품의 현감과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18세기에 편찬된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의흥에는 6품의 음관(蔭官)이 현감으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30명, 인리(人吏) 47명, 지인(知印) 17명, 사령(使令) 23명, 관노(官奴) 30명, 관비(官婢) 29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의흥에는 종6품의 현감이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의흥현의 읍치와 관아는 현재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 읍내리 지역에 위치하였다.
변천
조선시대에 의흥현은 연혁에서 별다른 변동이 없다.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의흥군이 되어 대구부(大邱府)의 관할에 속했다(『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의흥군은 경상북도 관할의 4등군으로 편제되었다. 그러나 1914년에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의흥군은 군위군에 병합되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