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부(伊川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XML 가져오기)
 
(차이 없음)

2017년 12월 10일 (일) 02:05 기준 최신판



고려시대 이천 지방을 다스리던 관아. 조선시대 이천 지방을 통치하던 관청 및 행정기구.

개설

고려초기 10도제에서 이천현(伊川縣)으로 삭방도(朔方道)에 편제되었다. 이어서 지방제도 개편에서 동주(東州)의 속현(屬縣)이 되었다가 뒤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고려후기까지 감무 체제로 지속되었다. 조선초기에 경기좌도로 편제되었다가 8도제가 시행되면서 현감(縣監)이 파견되어 주현(主縣)으로 승격되었고, 아울러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이속되었다. 광해군 때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인조 때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숙종 때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구려에서는 이진매현(伊珍買縣)이라 하였다. 신라에서 이천현(伊川縣)으로 고치고 토산군(兎山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995년(고려 성종 14) 10도제에서 삭방도로 편제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동주에 예속시켰다가 후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 1394년(태조 3)에 경기도를 좌·우도로 구분할 때, 좌도에 편제되었다(『태조실록』 3년 6월 23일). 1413년(태종 13)에 8도제가 시행되면서 현감이 배치됨으로써 주현으로 승격되었고,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이속되었다. 1455년(세조 1)에 군익도(軍翼道) 체제에 따라 철원도(鐵原道)를 설치하고, 철원과 안협은 중익(中翼)으로, 이천은 좌익(左翼)으로 편제하였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세조 3)에 군익도 즉 3익(三翼) 체제를 폐지하고 거진(巨鎭)을 설치하는 진관(鎭管) 체제에서 회양진(淮陽鎭)에 귀속되었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1692년(숙종 18)에 회양진 소속의 여러 진을 철원영장(鐵原營將) 관할로 이속시켰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광해군이 분조(分朝)하여 이곳에 머물렀다(『인조실록』 1년 4월 5일). 이에 1608년(광해군 1)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623년(인조 1)에 이천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86년(숙종 12)에 이천부로 승격되었다(『숙종실록』 12년 12월 21일).

조직 및 역할

조선초기에 현감과 훈도(訓導) 각 1인을 배치하였다. 현감은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부사로 교체되었고, 부사는 3품으로 문무관(文武官)직이었다. 부사의 예하에는 향청(鄕廳)을 두고 좌수(座首) 1인과 별감(別監) 2인을 두었다. 6방(六房) 관속의 규모는 후기에 이르면서 증원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토포군관(討捕軍官) 30인, 아전(衙前) 33인, 지인(知印) 15인을 두었다. 그리고 사령(使令) 10명, 군뢰(軍牢) 4명, 관노(官奴) 21명, 관비(官婢) 10명을 두었다. 6방 관속은 객사(客舍), 아사(衙舍), 향청, 훈련청(訓練廳), 군기청(軍器廳), 관청(官廳), 대동청(大同廳), 부사(府司) 등에 배속되어 분장하였다.

변천

1895년(고종 32)에 지방관제의 개편에 따라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시행하면서 강원도는 춘천부와 강릉부로 분할되었으며, 군현제가 폐지되고 부의 하부조직으로 군제가 시행되었다. 이때 이천은 이천군으로 춘천부에 소속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23부제를 폐지하고 13도제를 시행하면서 춘천부와 강릉부는 통합되어 강원도가 되었다. 이때 이천군은 강원도에 귀속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관동읍지(關東邑誌)』
  • 『관동지(關東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강원도, 『강원도사』11, 강원도사 편찬위원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