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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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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청풍부 |
한글표제 | 청풍부 |
한자표제 | 淸風府 |
상위어 | 충청도(忠凊道) |
동의어 | 사열이(沙熱伊) |
관련어 | 청공(淸恭), 명성왕후(明聖王后)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임용한 |
폐지 시기 | 1914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청풍부(淸風府)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현종실록』 즉위년 6월 2일 |
충청북도 제천군 청풍면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청풍부(淸風府)는 충청도 충주목에 속한 부(府)이다. 고려 1336년(고려 충숙왕 5)에 군으로 승격하였다. 조선 1659년(현종 1)에 다시 부로 승격하였다. 15세기에 호수는 191호, 인구는 656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26명, 선군(船軍) 21명이었다. 토질은 척박한 편으로 규모도 1,955결에 불과하였는데, 이 가운데 논이 135결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하였으며, 1914년에 제천군에 병합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청풍부는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사열이현(沙熱伊縣)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청풍(淸風)으로 개명하고 내제군(柰堤郡)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 1018년(고려 현종 9)에 충주의 속현으로 이속하였다. 고려중기 이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1336년(고려 충숙왕 5)에 고을 사람인 승려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었으므로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이를 유지하다가 1659년(현종 1)에 왕비인 명성왕후의 고향이라고 하여 부로 승격하였다(『현종실록』 즉위년 6월 2일). 청풍은 월악산을 끼고 있는 산악 지역이었다. 일반적으로 현감이 파견되는 곳보다 규모가 작은 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 고립되었고 월악산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으므로 군으로 두었다. 평지가 적어 조선후기까지도 화전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농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서 밤이나 마와 같은 특용작물을 재배하여 생계를 보완하였다.
조직 및 역할
조선전기에는 종4품 군수가 파견되었다. 그러나 현종 때 부로 승격한 이후에는 종3품 부사를 두었다. 부사는 문과 출신이나 음서 출신자로 임명하였다. 관속은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16명, 아전 18명, 지인 13명, 사령 13명, 관노 25명, 관비 19명이 속해 있었다.
변천
18세기에는 8개 면이 있었다. 가호는 2,363호, 인구는 남자가 2,527명, 여자가 3,764명이었다. 토지는 밭 1,610결, 논 268결이었다. 1895년에 군으로 삼았다가 1914년의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때 제천군에 병합해서 청풍면이 되었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