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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00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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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선산부 |
한글표제 | 선산부 |
한자표제 | 善山府 |
관련어 | 일선(一善), 숭선(嵩善), 선주(善州), 화의(和義)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신라~조선 |
왕대 | 신라~조선 |
집필자 | 정요근 |
폐지 시기 | 1895년(고종 32)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선산부(善山府)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선산부(善山府)는 신라의 일선군(一善郡)에서 기원하며, 신라 경덕왕 때 숭선군(崇善郡)으로 개명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선주자사(善州刺史)가 되었으나 자사는 곧 폐지되고, 1018년(고려 현종 9)에 선주는 상주(尙州) 소속으로 편제되었다. 1143년(고려 인종 21)에 선주를 일선현(一善縣)으로 개명하고 현령(縣令)을 파견하였으며, 이후 일선현령은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승격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에 선주는 선산군(善山郡)이 되었다가, 1415년(태종 15)에 선산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선산부에는 도호부사(都護府使)가 임명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선산부는 선산군이 되어 대구부(大邱府)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에 선산군의 중심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지역에 위치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선산부는 신라의 일선군에서 기원하였다. 일선군은 신라 614년(신라 진평왕 36)에 일선주(一善州)가 되었다가 687년(신라 신문왕 7)에 폐지되고 경덕왕 때 숭선군이 되었다. 고려에 들어와서 995년(고려 성종 14)에 선주자사가 되었으나, 1018년에 상주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1143년에 선주는 일선현으로 개명되고 현령이 파견되었다. 이후에 일선은 선주로 개명되고 지선주사가 임명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인 1413년에 선주는 선산군으로, 지주사(知州事)는 지군사(知郡事)로 개칭되었다가, 1415년에 선산군이 선산도호부로 승격하면서 지군사 대신 도호부사가 파견되었다.
조직 및 역할
선산부는 신라 경덕왕 때 9주 중 상주 경내의 숭선군으로 편성되어 효령현(孝靈縣), 이동혜현(尒同兮縣), 군위현(軍威縣) 세 곳의 영현(領縣)을 거느렸다. 당시 숭선군에는 지방관으로 군태수(郡太守)가 파견되었다. 숭선군은 고려시대에 들어와 선주로 개칭되고 선주자사가 임명되었으나 곧 폐지되었다. 1018년에 선주는 상주에 소속되어 별도의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지만, 1143년에 일선현으로 개명되고 선주에는 현령관이 파견되었다. 당시 군위와 효령, 해평(海平) 3개 고을이 상주에서 일선현으로 이속되었다. 이후 지선주사가 파견되었고, 조선 건국 이후에는 선산도호부사가 임명되었다. 고려시대에 선주에는 현령이나 지주사가 근무하는 외관청(外官廳)과 별도로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 달리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선산부사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선산부에는 종3품의 도호부사와 종6품의 교수(敎授)가 파견되었다. 18세기에 편찬된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선산부에는 정3품의 문관(文官) 혹은 음관(蔭官)이 도호부사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3명, 군관(軍官) 90명, 인리(人吏) 48명, 지인(知印) 38명, 사령(使令) 19명, 군뢰(軍牢) 50명, 관노(官奴) 18명, 관비(官婢) 17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는 선산에 종3품의 도호부사가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자료인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의하면 선산에 18개의 면과 309개의 리가 기재되었으며, 호수는 8,863호, 인구는 42,972명으로, 남자는 19,841명, 여자는 23,131명이었다. 조선시대에 선산부의 읍치와 관아는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완전리 일대에 위치하였다.
변천
조선초기에 선산군이 선산부로 승격한 이래, 선산에 대한 특별한 연혁의 변동은 보이지 않는다.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선산부는 선산군으로 개칭되어 대구부(大邱府)의 관할하에 있었다(『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선산군은 경상북도 관할의 3등군으로 편제되었다. 선산부는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