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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54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함경도 경성에 위치했던 역.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오촌역(吾村驛)은 경성도호부(鏡城都護府) 남쪽 3리(약 1.2㎞) 지점에 위치했다. 조선시대에 신설된 역으로, 수성도(輸城道)의 소속 역(驛)으로 편성되었다.

내용 및 변천

오촌역이 위치했던 경성 지역은 천리장성 외부에 있어 고려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던 곳이었으나, 고려말 쌍성총관부를 수복하는 과정에서 고려의 영토로 정식 편입되었다. 오촌역은 그 이후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촌역의 옛 이름이 오로촌(吾老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세종실록』 지리지 함길도 경성군]. 『태조실록』에 따르면, 1398년(태조 7)에 오로촌참(吾老村站)이 오촌참(吾村站)으로 개명되었다고 했으므로, 오촌역의 설치 시기는 1398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오로촌참이라는 역(驛) 시설이 운영되었다.

조선시대 함경도 지역의 역들은 남쪽의 안변 지역으로부터 북쪽의 두만강 연안에 이르기까지 남북으로 길게 편성된 교통로를 중심으로 설치, 운영되었다. 이 역들에 대한 역도(驛道) 편성은 몇 차례의 변동을 거친 후에 고산도(高山道), 거산도(居山道), 수성도(輸城道) 등 3개의 역도로 정비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회통(大典會通)』에는 함경도의 역들이 모두 이 3개의 역도로 편제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오촌역은 시리도(施利道) 소속으로 기록되었지만, 이후 몇 차례의 역도 개편을 통해 『경국대전』에 오촌역은 수성도 소속의 역으로 기록되었다. 『대전회통』에도 변함없이 수성도에 소속되었다. 대체로 수성도는 경성 이북 두만강 이남에 위치한 역들로 편성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오촌역에는 상등마(上等馬) 2마리, 중등마(中等馬) 4마리, 하등마(下等馬) 18마리, 역리(驛吏) 319명, 역노(驛奴) 68명, 역비(驛婢) 42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오촌역은 남쪽으로는 명천·길주 방면, 북쪽으로는 부령·회령 방면과 연결되는 한양~경흥간 간선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오촌역에서는 남쪽으로 경성 영강역(옛 요참역), 북쪽으로 경성 수성역 등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오촌역도 폐지되었다.

오촌역의 위치는 현재 북한의 행정 구역으로 함경북도 경성군 승암로동자구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호구총수(戶口總數)』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정요근, 「조선초기 驛路網의 전국적 재편」, 『조선시대사학보』46, 조선시대사학회, 2008.
  • 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한국평화문제연구소 공편, 『조선향토대백과사전』, 평화문제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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