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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53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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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일출소학교 |
한글표제 | 일출소학교 |
한자표제 | 日出小學校 |
상위어 | 경성공립심상고등소학교(京城公立尋常高等小學校), 경성거류민단립심상고등소학교(京城居留民團立尋常高等小學校) |
하위어 | 남대문심상소학교(南大門尋常小學校), 앵정심상소학교(櫻井尋常小學校), 용산심상고등소학교(龍山尋常高等小學校), 원정심상소학교(元町尋常小學校), 종로심상고등소학교(鐘路尋常高等小學校) |
동의어 | 일출심상고등소학교(日出尋常高等小學校), 일출심상소학교(日出尋常小學校), 일신초등학교(日新初等學校) |
관련어 | 덕혜옹주(德惠翁主) |
분야 | 교육·출판/교육기관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대한제국~일제강점기 |
왕대 | 고종~순종 |
집필자 | 김명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일출소학교(日出小學校)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순종실록부록』 14년 5월 4일, 『순종실록부록』 15년 3월 11일, 『순종실록부록』 16년 6월 28일, 『순종실록부록』 17년 7월 11일 |
1889년(고종 26) 경성 내 일본인 거류민단이 설립한 소학교.
개설
1889년 경성의 일본인 거류민단은 일출심상고등소학교를 신설하여 불어나는 경성 재주 일본인들의 자녀들을 교육하였다. 이후 경성 내 일본인 인구의 증가와 함께 소학교 또한 증설되어, 1903년(광무 7) 용산심상고등소학교, 1908년(융희 2) 남대문심상소학교, 1910년(융희 4) 앵정(櫻井)심상소학교, 1911년 종로심상고등소학교, 1911년 원정(元町)심상소학교가 차례로 신설되었다. 일출소학교에는 1921년 덕혜옹주가 2학년으로 입학하여 1925년 3월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재학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일본명으로 ‘히노데[日出]’ 소학교로 경성에 거주하는 일본인 거류민단이 일본인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소학교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월곡로 74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일신초등학교의 전신이다. 서울일신초등학교 연혁에 의하면, “1889년 경성부 일출정에 경성일출심상소학교로 개교”했다고 되어 있다. 이 학교 자리는 1751년(영조 27)에 균역청을 세웠던 자리로,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 일신정(日新丁)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소학교로 알려져 있는 교동초등학교의 역사가 1894년(고종 31) 9월 18일부터 시작되고, 1895년 7월 19일 근대식 학제로 ‘소학교령’이 반포되는 것을 고려하면, 일출심상소학교는 일본인 거류민단에 의해 설립된 소학교였다고 생각된다. 또한 학교명이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히노데’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변천
야마모토 요시히사[山本吉久]는 1906년(광무 10) 1월 29일에 경성공립심상고등소학교(京城公立尋常高等小學校) 훈도에 임명되었다가 그해 8월 30일에 다시 경성거류민단립심상고등소학교(京城居留民團立尋常高等小學校) 훈도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에 서울(경성)에 있던 두 개의 소학교에 훈도로 임명된 것인데, 개정된 소학교 학칙에 의거해 교명이 전자에서 후자로 바뀐 것이다. 즉, 경성공립심상고등소학교칙(京城公立尋常高等小學校則)이 1906년 8월 30일에 경성거류민단립심상고등소학교칙(京城居留民團立尋常高等小學校則)으로 개정된 듯하다. 개정 소학교 학칙 중에 새롭게 한국어를 수의과(隨意科)에 편입시키고, 수업료를 심상과 40전(개정 전 30전)과 고등과 80전(개정 전 70전)으로 인상하였다.
1908년 3월 16일 통감부고시 제39호에 의해 경성거류민단립심상고등소학교는 1908년 4월 1일부터 경성거류민단립제일심상고등소학교(京城居留民團立第一尋常高等小學校)로 개칭되었다. 1908년 4월부터 남대문에 또 하나의 소학교가 신설되었기 때문이다. 1910년 3월 30일에는 통감부고시 제37호에 의해 경성거류민단립 제일심상고등소학교가 경성거류민단립일출심상고등소학교(京城居留民團立日出尋常高等小學校)로, 경성거류민단립제이심상고등소학교(京城居留民團立第二尋常高等小學校)가 경성거류민단립남대문심상고등소학교(京城居留民團立南大門尋常高等小學校)로 변경되었다. 1910년 4월에는 사쿠라이[櫻井]심상소학교가 신설되었고, 1911년 12월에는 종로심상고등소학교가 신설되었다. 또한 심상소학교의 수업연한이 6년으로 연장되면서 심상과를 졸업하는 학생 수에 비해 고등과로 진학하는 학생 수가 적어 1911년 일출심상고등소학교와 남대문심상고등소학교에 병설되어 있던 고등과를 폐지하고, 신설된 종로심상고등소학교로 고등과를 집중시켰다.
정리하면, 1889년에 설립된 경성일출심상소학교가 경성공립심상고등소학교칙에 의거하여 운영되다가 1906년 8월 30일 소학교 학칙이 경성거류민단립심상고등소학교칙으로 개정되면서 경성거류민단립심상고등소학교로 개칭되었고, 다시 1908년 3월 16일 통감부고시 제39호에 의해 경성거류민단립제일심상고등소학교가 되었다가 1910년 3월 30일 통감부고시 제37호에 의해 경성거류민단립일출심상고등소학교가 된 것이다. 1911년 고등과가 폐지되면서는 일출심상소학교가 되었다. 당시의 일본인 거류민단립 소학교 현황은 표1과 같다.
- 표1_00017197_일본인 거류민단립 소학교 현황
일출소학교는 고종황제의 외동딸 덕혜옹주가 다닌 학교이기도 하다. 덕혜옹주는 1921년 4월 1일부터 일출소학교 심상과에 2학년(3組)으로 입학하였다. 그때까지는 한상룡의 딸 한효순(韓孝順, 1920년 11세), 민영찬의 딸 민용안(閔龍安, 10세), 이재곤의 딸 이해순(李海順, 10세) 등 3명과 창덕궁에서 공부했다. 덕혜옹주는 1921년 5월 4일 덕혜(德惠)라는 호를 받기 전까지 창덕궁 복녕당(福寧堂) 아기씨(阿只氏)로 불렸다(『순종실록부록』 14년 5월 4일). 덕혜옹주는 1925년 3월에 일본 학습원으로 강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그때까지 일출소학교에 재학하였다. 순종황제는 덕혜옹주가 입학한 것을 기념하여 경성학교조합에 400원을 하사하기도 했고(『순종실록부록』 15년 3월 11일), 보호자로서 일출소학교 보호자회에 30원을 하사하기도 했다(『순종실록부록』 16년 6월 28일). 또한 덕혜옹주의 교육에 공이 있다 하여 학교장과 이왕직 직원 등에게 상금을 내리기도 했다(『순종실록부록』 17년 7월 11일).
참고문헌
- 『동아일보』 1920년 6월 3일자; 1921년 4월 1일자.
- 『통감부고시』 제39호(1908년 3월 16일); 『통감부고시』 제37호(1910년 3월 30일).
- 서울대학교 박물관,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서울대학교박물관 사진특별전』, 서울대학교, 2006.
- 大村友之丞, 『京城回顧錄』, 朝鮮硏究會, 1922.
- 『서울일신초등학교 홈페이지』, www.ilshin.es.kr.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http://db.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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