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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52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충청도 충주에 위치했던 역.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연원역(連原驛)은 충주목 북쪽 5리(약 2㎞)에 위치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평구도(平丘道) 소속의 역(驛)으로 편성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연원도(連原道)의 대표 역으로서, 15개 소속 역들을 관장하는 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이 집무를 보던 중요한 역이었다.

내용 및 변천

연원역은 고려시대에도 충주에 위치했으며, 22역도 중 평구도의 소속 역으로 편성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연원역은 연원도의 대표 역으로서 7개 역을 관할하는 연원도역승(連原道驛丞)이 파견되었다. 1462년(세조 8) 전국적인 역도제(驛道制)의 개편 때에는 연원도의 관할 역이 14개 역으로 확대되었으며, 연원도에는 찰방(察訪)이 파견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그만큼 연원역의 중요성이 높아진 것이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연원역은 15개의 소속 역을 관할하는 연원도찰방이 파견된 연원도의 대표 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연원역은 조선초기 이래 조선후기까지 연원도의 대표 역이었던 것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연원역에는 역리(驛吏) 50명, 지인(知印) 20명, 사령(使令) 6명, 역노(驛奴) 155명, 역비(驛婢) 94명과, 대마(大馬) 3마리, 기마(騎馬) 4마리, 복마(卜馬) 7마리가 배속되어 있었다.

연원역은 충주의 관문 역할을 하는 충주 지역의 대표 역이자 한양에서 영남 지역을 연결하는 간선 교통로상의 주요 역이었다. 연원역에서 서북쪽으로는 음죽 방면, 동남쪽으로는 괴산·조령·문경 방면, 서쪽으로는 음성 방면, 동쪽으로는 단양·죽령·풍기 방면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연원역에서는 서북쪽으로 충주 가흥역(可興驛), 동남쪽으로 충주 단월역(丹月驛)과 연풍 안부역(安富驛), 서쪽으로 충주 용안역(用安驛), 동쪽으로 청풍 황강역(黃江驛) 등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연원역도 폐지되었다.

연원역의 위치는 현재 충청북도 충주시 연수동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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