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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49 기준 최신판



충청남도 당진시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당진현(唐津縣)은 조선시대 충청도 홍주목에 속한 현이다. 통일신라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설립되었다. 15세기에 호수가 284호, 인구가 1,489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2명, 진군(鎭軍) 8명, 선군(船軍) 120명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당진군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당진현은 삼국시대 때는 백제의 현이었으며, 벌수지현(伐首只縣) 또는 부지현(夫只縣)으로 불렸다. 통일신라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당진현으로 이름으로 고쳐서 지금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 지역인 혜성군(槥城郡)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 1018년(고려 현종 9)에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에 위치한 운주(運州)에 속하였다. 1106년(고려 예종 즉위)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 1413년(태종 13)에 홍주목에 속하게 하고 감무를 현감으로 고쳤다.

조직 및 역할

수령은 종6품 현감이다. 문과 출신이나 남항(南行) 출신을 주로 파견하는 지역이 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18세기 통계에 의하면 관아에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20명, 아전 30명, 지인 14명, 사령 16명, 관노 25명, 관비 20명이었다. 관방시설로는 당진포영(唐津浦營)이 현 서쪽 34리에 있으며, 수군만호(水軍萬戶) 1명이 있었다. 난지도수(難知島戍)는 현 북쪽 바다 가운데에 있으며, 당진포의 만호(萬戶)가 군병을 나누어서 지켰다.

변천

이전 시대와 비교하여 보면 조선후기에도 행정구역에 변화가 없었다. 조선후기에는 읍면이 7개로 구성되었다.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己卯帳籍)에 따르면 7개 면 도합 원호(元戶) 3,664호, 남자 6,841명, 여자 7,273명이었다. 토지는 밭 728결 82부 7속, 논 1,017결 18부 2속이었다. 1895년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국을 23부(府)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이때 홍주부 당진군으로 승격되었다(『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1896년(고종 33)에 충청남도 당진군이 되었다. 1914년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면천군과 해미군, 예산군의 일부를 병합하여 당진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