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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47 기준 최신판



임진왜란 당시 명이 조선에 파견한 중국 북부지역의 군대.

개설

북병은 명의 요동(遼東) 지역을 수비하는 군사이다. 조선에서는 명의 남쪽 지역 출신 군사를 남병으로 부르면서, 요동 지역 출신 군사들을 북병으로 불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북병은 몽골과 여진족 등 유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수비병이었다. 따라서 북병은 대부분 기병으로 구성되었다.

조직 및 역할

조선의 원병 요청을 받은 명은 1592년 6월 요동의 군사 1,000여 명을 원군으로 파병하였고(『선조수정실록』 25년 6월 1일), 이어 조승훈(祖承訓)이 거느린 명군이 조선에 파견되었다(『선조실록』 25년 6월 20일). 8월에는 갈봉하(葛逢夏)를 의주로 보내 선조를 호위케 하였다(『선조수정실록』 25년 10월 1일). 이때 조선에 파견된 명군이 바로 북병이었다. 이들 북병에게는 매달 안가은(安家銀) 5냥, 월량은(月糧銀) 1냥이 지급되었다.

변천

1592년 7월, 조승훈이 이끄는 약 3천여 명의 명군이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 이들은 대부분 기병으로 구성된 북병이었다. 이들은 일본군이 주둔하던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나 패한 후 퇴각하였다. 명 조정은 다시 병력을 징발하였는데 북병은 물론이고 남병을 추가로 파견하였다. 이후 북병과 남병은 공을 다투었다. 그 결과 명군은 조선인의 목을 베어 전과를 증명하는 일도 있었다.

참고문헌

  • 육군군사연구소, 『한국군사사』7, 경인문화사, 2012.
  • 한명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사비평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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