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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46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함경도 안변에 위치했던 역.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봉룡역(奉龍驛)은 안변도호부 서쪽 30리(약 11.8㎞)에 위치하였다. 봉룡역은 고려시대에 보룡역(寶龍驛)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으며 삭방도(朔方道)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봉룡역은 고산도(高山道)의 소속 역(驛)으로 편성되었다.

내용 및 변천

봉룡역은 고려시대에는 삭방도 소속의 역으로 편제되었으며, 안변의 속현이었던 서곡현에 위치했다.

조선시대 봉룡역을 비롯해 고산역(高山驛)·삭안역(朔安驛)·남산역(南山驛)·화등역(火燈驛) 등 함경도 지역의 역들은 남쪽의 안변 지역으로부터 북쪽의 두만강 연안에 이르기까지 남북으로 길게 편성된 교통로를 중심으로 설치, 운영되었다. 이 역들에 대한 역도(驛道) 편성은 몇 차례의 변동을 거친 후에 고산도(高山道), 거산도(居山道), 수성도(輸城道) 등 3개의 역도로 정비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회통(大典會通)』에는 함경도의 역들이 모두 이 3개의 역도로 편제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봉룡역은 고산도 소속으로 기록되었으며, 옛 명칭이 보룡역이었다고 나와 있다. 『경국대전』과 『대전회통』에도 변함없이 봉룡역은 고산도에 소속되었다.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고산도는 대체로 남쪽의 안변에서 북쪽의 함흥 사이에 위치한 역들로 편성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봉룡역에는 상등마(上等馬) 2마리, 중등마(中等馬) 5마리, 하등마(下等馬) 8마리, 역리(驛吏) 74명, 역노(驛奴) 633명, 역비(驛婢) 405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봉룡역은 남쪽으로는 철령 및 안변 방면, 북쪽으로는 덕원·문천 방면을 연결하는 한양~경흥간 간선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봉룡역에서는 남쪽으로 안변 남산역(南山驛), 북쪽으로 덕원 철관역(鐵關驛) 등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봉룡역도 폐지되었다.

봉룡역의 위치는 현재 북한의 행정 구역으로 강원도 원산시 수상리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정요근, 「조선초기 驛路網의 전국적 재편」, 『조선시대사학보』46, 조선시대사학회, 2008.
  • 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한국평화문제연구소 공편, 『조선향토대백과사전』, 평화문제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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