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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평안도 맹산현 지역을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맹산현(孟山縣)은 1415년(태종 15)에 설립되어 1895년(고종 32)에 평양부 맹산군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철옹현, 조선초기에는 덕맹현(德孟縣)으로도 불렸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맹산현은 고려 때 철옹현으로 불리다가 1019년(고려 현종 10)에 맹주방어사(孟州防禦使)로 바뀌었다. 1232년(고려 고종 19)에 몽골의 침입으로 관청을 섬으로 옮겼다가, 1261년(고려 원종 2)에 섬에서 나와 안주(安州)의 속현이 되었다. 1391년(고려 공양왕 3)에 안주에서 떨어져 나와 현령을 두었다. 조선이 건국한 이후 1414년(태종 14)에 덕천(德川)과 맹산(孟山)을 합하여 각각 한 글자씩 따서 덕맹현을 두었다가, 1415년(태종 15)에 맹산현과 덕천군으로 각각 분리하면서 설립되었다.

조직 및 역할

맹산현은 1415년에 종6품의 현감을 두어 현을 관할하게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현감과 훈도(訓導) 각 1인을 두었으나 이후에 훈도를 폐지하였다. 종6품의 현감은 지방행정관서인 현의 책임자로 수령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종9품의 훈도는 교관으로 지방 향교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조선후기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의하면 소속 관원으로는 좌수 1명, 별감 2명, 도감 2명, 각창 감관 6명, 중군 1명, 별장 1명, 천총 1명, 파총 2명, 기고관 2명, 교련관 2명, 군관행수 1명, 병방 2명, 초관 9명, 기패관 4명, 향리 19명, 가리(假吏) 9명, 통인 20명, 사령 14명, 군뢰(軍牢) 12명, 관노 108명, 관비 114명이 있었다.

변천

맹산현은 조선이 건국한 이후 1401년(태종 1)에 다시 안주에 합쳐지고, 1414년(태종 14)에는 덕주와 합쳐서 덕맹현이라 불렀으며, 1415년(태종 15)에 다시 분리되어 맹산현이 되었다(『태종실록』 15년 3월 25일). 이후 1895년에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평양부 맹산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이존희, 「조선초기의 수령제도」, 『역사학보』30·31 합집,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