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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45 기준 최신판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일대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본래 백제두내산현(豆乃山縣)이었는데, 신라 때 만경현으로 고치고 고려 1106년(고려 예종 1)에 만경현에 감무를 두었다. 1409년(태종 9)에 만경현이 관할해 오던 1현 1소를 만경현에 편입하였다. 1455년(세조 1)에는 만경현이 전라도 전주도(全州道)의 우익을 맡았다. 1457년(세조 3)에는 만경이 전라도 7진 가운데 하나인 부안진에 속했다. 1620년(광해군 12)에 기근으로 백성들이 흩어지자 만경현을 폐지하고 김제군에 소속시켰다가, 1622년(광해군 14)에 다시 전주부에 소속시켰다. 1637년(인조 15)에 원래대로 만경현이 복구되었다. 1872년(고종 9)에 삼군부가 해안 방어의 강화 차원에서 만경현에 포군(砲軍) 30명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에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면서 만경현이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사』에는 1106년(고려 예종 1)에 만경현에 감무를 두었다고 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곧 현령으로 승격시켰으며, 조선이 건국한 후에도 이것이 이어졌다. 1409년에 도관찰사(都觀察使)윤향(尹向)이 건의하여,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현과 향·소·부곡은 거의 모두 본 고을에 합쳐졌다. 이때 만경현이 관할해 오던 1현 1소가 폐지되어 만경현의 직촌(直村)이 되었다. 1현은 부윤(富潤)으로 고려에서는 임피의 임내(任內)로 하였다가 나중에 만경현에 소속시킨 곳이다. 1소는 이파산(泥波山)이다.

조직 및 역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만경현에 종5품 현령(縣令) 1인과 종9품 훈도(訓導) 1인을 둔다고 되어 있다. 현령은 종6품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겸하였다. 훈도는 5백 호 이상인 고을에는 모두 두기로 한 것에 따른 것이다(『세종실록』 12년 1월 21일). 만경현령 밑에 중앙 관제와 마찬가지로 이·호·예·병·형·공 6방을 두었다. 현감 아래 향청(鄕廳)의 향임(鄕任)으로 좌수(座首)와 별감(別監) 등을 두었다. 이들은 6방을 나누어 장악하여 현령의 지방 행정을 보좌하였다. 향임은 대부분 부세의 분배와 징수, 향풍의 교정, 향리의 감찰 등을 맡았다. 또한 『증보문헌비고』에는 종4품 무관직인 전라도의 수군동첨절제사(水軍同僉節制使)가 6원으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 만경현에 고군산첨사(古群山僉使)를 두었는데, 뒤에 종3품 첨절제사(僉節制使)로 승격하였다. 1890년(고종 27)에 모두 폐지되었다.

변천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1620년에 농사가 잘 안 되어 백성들이 흩어져서 만경현을 폐지하고 김제군에 소속시켰다가, 1622년에는 다시 전주부에 소속시켰다. 1637년에 순무사(巡撫使)의 장계로 말미암아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1455년(세조 1)에는 각 도의 내지(內地)에도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주변의 여러 고을을 중·좌·우익으로 나누어서 소속을 정하였다. 이때 만경을 전라도 전주도의 우익으로 삼았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에 각 도의 중·좌·우익을 폐지하고 거진을 설치하였다. 이른바 진관(鎭管) 체제로 바뀌면서 전라도에는 7곳에 거진이 설치되었는데 만경은 전라도의 부안진에 속했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진관 체제는 그 뒤로도 조금씩 변화를 거치면서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만경이 속한 부안진은 충좌위의 중부(中部)인 전주진관으로 편입되었다. 이로써 5개 거진을 중심으로 그 아래 여러 진에 편제된 내륙과 연해 지역의 육군과 수군이 전라도의 방위를 맡았다.

조선후기에는 전주거진이 전라중영(全羅中營)으로 바뀌었다. 전라중영의 속읍은 전주·김제·고부·진안·임실·금구·만경·부안 8곳이며, 병수(兵數)는 마병(馬兵) 5초(哨), 속오(束伍) 46초, 표하군(標下軍) 454명, 당보군(塘報軍) 59명, 수솔군(隨率軍) 689명으로 되어 있다.

1872년에 삼군부가 만경현에 포군(砲軍) 30명을 두었다(『고종실록』 9년 3월 24일).

1895년에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면서 만경현이 폐지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전국 23부를 다시 13도로 개정할 때 전라남도와 전라북도가 분리되었다. 전라북도는 수부(首府)를 전주에 두었으며, 만경군을 비롯한 26개 군으로 편성되었다. 1914년에는 그것이 만경면이 되어 김제군에 편입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대동지지(大東地志)』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의안·칙령(議案·勅令)』
  • 박종기, 『지배와 자율의 공간, 고려의 지방사회』, 푸른역사, 2002.
  • 손정묵, 『한국지방제도·정치사연구(상)-갑오경장~일제강점기-』, 일지사, 2001.
  • 이수건, 『조선시대 지방행정사』, 민음사, 1989.
  • 이존희, 『조선시대 지방행정제도 연구』, 일지사, 1990.
  • 『김제시사』, 김제시사편찬위원회, 1995.
  • 『전라남도지』, 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1993.
  • 『전라북도지』, 전라북도,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