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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설립되어 서울의 상하수도 설비를 담당하여 수돗물을 공급한 회사.

개설

대한제국기에 서울에 상하수도를 설비하여 시민들에게 음용수를 제공할 목적으로 미국인 콜브란-보스트윅 회사에서 수도 부설권을 땄다가 영국의 인터내셔널 신디케이트 회사로 넘겨 세운 회사이다. 이 회사는 1908년 서울에 처음으로 상하수도를 매설하여 수돗물을 음용수로 공급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수도의 설치는 1880년대부터 이미 그 필요성이 제기되었는데, 당시 음용수로 주로 이용된 우물물이 오염되었다는 지적이 많은 데 따른 것이었다. 한편 서울의 인구가 20만을 넘어서면서 수도의 필요성이 증가하는 추세였고, 이에 미국인 회사에서 수도 설치를 계획했다. 콜브란-보스트윅 상회에서는 수도 설치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자 한 반면,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시민들에게 깨끗한 음용수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1910년 당시 서울 시내 우물 수는 총 1만 1,410개였으나 그 가운데 음용수로 부적당하다고 판정된 것이 9,911개에 이를 만큼 우물물의 오염이 심각한 상태였다.

대한제국 정부에서 미국인 회사인 콜브란-보스트윅 회사(Collbran and Bostwick Co.)에 수도 부설권을 허가한 것은 1898년이었으나, 미국 차관 도입의 실패와 정치적 상황의 변화 등으로 인해 착공이 지연되었다. 마침내 1903년 12월 9일자로 외부대신 서리이하영과 미국영사고든 패독 간에 수도 사업에 관한 계약이 체결되자, 콜브란-보스트윅 회사는 이 부설권을 런던의 인터내셔널 신디케이트 회사에 1905년 11월에 매도하였고 이후 정식으로 대한수도회사(大韓水道會社, Korean Waterworks Limited)가 설립되었다. 대한수도회사에서는 콜브란-보스트윅 개발회사에 다시 수도 부설을 청부하였으며, 이 회사는 1906년 8월 공사를 착공하여 1908년 8월 수도 설비를 완공함으로써 급수를 개시하였다. 1909년 콜레라가 유행하자 대한수도회사 공용 수전(水栓)으로 무료 급수를 실시하기도 하였다.(『순종실록』 2년 9월 25일)

조직 및 역할

대한수도회사는 뚝섬 서쪽 끝에 1만 4,000여 평의 수원지를 건설하여 기관실, 침전지(沈澱池), 여과지(濾過池) 및 정수지(淨水池)를 설치하고, 취수 펌프로 한강 중류에서 인양한 원수(源水)를 침전, 여과시킨 후 송수 펌프로 경성의 동부 대현산(大峴山) 배수지로 끌어올린 후에 경성 및 용산 시가지로 급수하였다.

대한수도회사에서는 급수관이 공급되는 동리에 공용전(共用栓)을 설치하고 각 공용전에는 급수상을 고용하여 관리하도록 하였다. 물장수들에게 호패를 지급하고, 그 중에 한 명을 패장으로 선발한 다음 공용전의 자물쇠를 지급하여 관리를 맡겼다. 수도의 설치로 수도관이 매설된 동리에서는 음용이 부적합한 우물물 대신 정수된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한수도회사의 급수력은 설립 당시 1일 250만 갤런의 규모로 건설되었다. 이후 1913년 급수력이 300만 갤런의 규모로 증가하였는데 이는 1일 12만 2,000여 명에게 급수할 수 있는 수량이었다.

변천

대한수도회사에서 상하수도를 설치하여 수돗물을 공급한 이후에도 우물물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지지 않았다. 그것은 일반인들 사이에 우물물이 비위생적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지 못한 이유와 함께, 우물물을 길어 공급하는 물장수들의 견고한 조직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수도가 집집마다 설치되지 않은 이상 공동 수도에 가서 물을 길어 날라야 했고, 공급받는 만큼 물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도 수돗물을 꺼리는 한 원인이었다.

대한제국의 탁지부에서는 1906년 4월에 수도 관련 업무를 담당할 수도국을 신설하고, 1909년 11월 수도급수규칙을 제정하였지만, 이것은 관영 수도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대한수도회사가 경영하는 서울의 수도는 탁지부의 관할 밖에 있었다.

일제의 강제 병합 후 총독부는 1911년 2월 18일에 관영수도급수규칙을 제정하여 공포하였고 대한수도회사는 한일병합 이후 1911년 1월 15일에 일본 정부를 대리하였던 시부자와 신디케이트에 매도되었다가 같은 해 4월 1일자로 다시 일본 정부에 매도되어 경기도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경기도에서는 1911년 7월 1일을 기하여 경성수상조합과 계약을 맺고 공용전의 수돗물 판매를 청부하여 수돗물 공급을 운용하였다.

참고문헌

  •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 『황성신문(皇城新聞)』
  • 손정목, 『한국개항기 도시사회경제사』, 일지사, 1982.
  • 조선총독부 편, 『水道少誌』, 1913.
  • 김재호, 「물장수와 서울의 水道-측정문제와 제도변화」, 『경제사학』23,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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