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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기에 역사와 예법에 관한 것을 정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

개설

사례소는 1897년(광무 1) 6월 조선왕조의 역사와 예문(禮文) 관련 기록을 모아 편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사례소의 설립은 대한제국의 성립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조선이 황제국을 칭하게 되면서 그러한 위상에 걸맞은 전례(典禮)를 정비하고자 했던 것이다. 실제로 사례소 활동에는 고종의 칭제(稱帝)를 도운 동도서기 계열의 개신 유학자들이 참여하고 있었고, 예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1898년 10월 예산 부족을 이유로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사례소는 1897년 6월 3일 설치되었다. 내부 대신남정철(南廷哲)의 건의에 따른 것인데 조선왕조 역대 왕의 치적을 다시 정리하고, 새 시대에 맞는 국가 전례를 정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례소에서는 조정과 민간[朝野]의 기록 가운데 사료(史料)가 될 만한 것을 수집하고 예문도 함께 수집하였으며 일관성 있게 편집하고자 했다. 남정철은 동도서기 계열의 학자 관료이며, 고종이 황제로 등극할 때 내부 대신으로서 적극 도운 인물이다.

조직 및 역할

1897년 6월 3일 남정철의 건의에 의해 만들어진 기구의 이름은 사례소가 아니라 사례국이었다. 이때 남정철 본인이 사례소 위원이 되었고, 3품 이종원(李種元)·남정필(南廷弼)·김인식(金寅植)이 부원(副員)으로 임명되었다. 6월 27일에는 처소를 내부에서 중추원으로 옮겼고, 곧이어 7월 1일에는 진사 김응수(金應洙), 전 도사조진규(趙晉奎) 등 인원을 추가로 보충하였다.

변천

1897년 6~7월 사례소는 동도서기 계열의 개신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19명의 인사를 모아 활발하게 편찬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9개월 만에 『대한예전(大韓禮典)』 10권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본래 예정되었던 선대 사료 수집 및 편찬 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설치 후 1년 4개월여 만인 1898년 10월 25일 사례소가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폐지 이유는 나라의 비용이 궁색하여 급한 경비도 지출할 수 없는데 급하지 않은 일에 거액의 비용을 허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고종실록』 35년 10월 25일).

참고문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대한제국관원이력서(大韓帝國官員履歷書)』
  • 서진교, 「대한제국기 고종의 황제권 강화정책 연구」, 서강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8.
  • 전호완, 「대한제국 성립 시기의 권력변동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 한영우, 「대한제국 성립과정과 『대례의궤』」, 『한국사론』4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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