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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42 기준 최신판



1898년(광무 2) 3월에 독립협회가 주도하여 한양의 종로 및 도심에서 국가의 폐단과 외세의 침략을 성토하던 민회.

개설

1895년(고종 32) 청일전쟁 이후 조선 정부는 청국을 중심으로 하던 화이질서를 벗어나기 위한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일본의 개혁 모델을 국내에 도입하려던 갑오개혁파는 서구적 근대화를 추구하는 제도의 개혁과 구폐의 철폐를 위해 과감한 정책의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갑오개혁파의 행동은 일본 세력의 침투를 돕는 양상이 되어 을미사변과 단별령 등의 사건을 야기하였다. 고종이 아관파천을 단행한 이후 러시아 세력이 이권을 장악하고 미국 등의 서구 세력과 각축을 벌이게 되었다. 이때 친미파라고 하는 서재필 등의 독립협회가 주도하여 러시아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으며 만민공동회의로 나타났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900년대 초기 한반도와 만주를 둘러싸고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의 세력이 합종연횡하게 되면서 열강 간에 세력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독자적인 개혁과 운동이 가능하던 시기였다. 독립협회가 주도한 만민공동회는 대한제국의 독자적인 개혁을 위한 외세의 배척, 황제의 권력과 의회가 주도하는 군민일체의 정치 체제를 지향하였다.

조직 및 역할

독립협회의 정치 활동 중 하나로 서울 시민, 소상인, 일부 지식인층이 주도했다. 1898년(광무 2) 3월 10일 독립협회는 종로에 자리한 무명 가게인 백목전 앞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약 1만 명이 참여하였고 쌀장수 현덕호(玄德鎬)를 회장으로 추대하였다. 이후 거의 매일 공동회를 열면서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총대위원이나 대표위원을 뽑아서 결의사항을 집행하고자 했다. 특히 천민인 백정이 연설을 하기도 하여 아래로부터의 민의가 표출된 집회였다.

변천

1898년 10월 29일 종로에서 관민공동회(官民共同會)가 열려 국가의 폐단과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 의논하여 제거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의정부의 여러 신하들이 함께 모임에 참가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집회에서 주장한 강령 중에서 고종에게 보고된 내용은 편민이국(便民利國)의 6조였다. "첫째, 외국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관리와 백성들이 마음을 함께하고 힘을 합쳐 전제황권(專制皇權)을 굳건히 한다. 둘째, 광산, 철도, 석탄, 산림 및 차관(借款), 차병(借兵)은 정부가 외국인과 조약을 맺는 것이니, 만약 각 부의 대신들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하여 서명하고 날인한 것이 아니면 시행할 수 없다. 셋째, 전국의 재정은 어떤 세금이든지 막론하고 모두 다 탁지부에서 관할하고, 다른 부(府)와 부(部) 및 사적인 회사에서 간섭할 수 없으며, 예산과 결산을 사람들에게 공포한다. 넷째, 이제부터 중대한 범죄에 관계되는 것은 특별히 공판(公辦)을 진행하되 피고에게 철저히 설명해서 마침내 피고가 자복한 후에 형을 시행한다. 다섯째, 칙임관은 대황제 폐하가 정부에 자문해서 과반수의 찬성에 따라 임명한다. 여섯째, 규정을 실지로 시행한다." 등이었다(『고종실록』 35년 10월 30일). 정부에서는 독립협회의 회원인 이상재(李商在)·방한덕(方漢德)·유맹(劉猛)·정항모(鄭恒謨)·현제창(玄濟昶)·홍정후(洪正厚)·이건호(李建鎬)·변하진(卞河璡)·조한우(趙漢禹)·염중모(廉仲謨)·한치유(韓致愈)·남궁억(南宮檍)·정교(鄭喬)·김두현(金斗鉉)·김귀현(金龜鉉)·유학주(兪鶴柱)·윤하영(尹夏榮) 등이 배후에서 집회를 유도한다고 보고 각각 태형(笞刑) 40대로 처결하자고 하였다. 하지만 고종은 특별히 관대한 은혜를 베풀어 풀어주라고 하였다(『고종실록』 35년 11월 10일).

그런데 당시 관료 일각에서는 민회(民會)에 대한 개념도 이해하지 못한 채 장사치, 기녀, 승려, 백정 등의 하급민들이 모여 정부를 비방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인식은 고종도 다르지 않았다(『고종실록』 35년 12월 9일).

결국 고종은 만민공동회가 어리석은 백성들을 부추겨 현혹시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속인다며 법부(法部)에서 체포하도록 하였다(『고종실록』 35년 11월 6일). 또한 정부는 보부상들을 이용하여 이들을 무력으로 해산시켰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使館記錄)』
  •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 1967.
  • 러시아대장성, 김병린 역, 『구한말의 사회와 경제: 열강과의 조약』, 유풍, 1983.
  • 와다 하루키, 이경희 역, 『러일전쟁과 대한제국』, 제이앤씨, 2011.
  • 이태진,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 2000.
  • A. 말로제모프, 석화정 역, 『러시아의 동아시아정책』, 지식산업사, 2002.
  • 임경석·김영수·이항준, 『한국근대외교사전』, 성균관대학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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