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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32 기준 최신판



종로대로에서 중부 소속의 전의감동(典醫監洞)과 대사동(大寺洞) 사이에 놓인 다리.

개설

철물교(鐵物橋)는 도성 내 종로대로에 있던 다리이다. 조선시대에 수도인 한양의 도로는 왕권의 상징성을 강화하는 의도로 만들었다. 동시에 기능적으로 도성 내 지역간의 행정적 연결성이 가미된 체제였다. 종로대로는 『주례』「고공기(考工記)」를 참고하여 56척으로 건설하였다. 도로망은 기본적으로 직선형으로 구성하였는데, 동서 대로인 종로는 흥인문에서 돈의문까지, 남북 대로는 경복궁 앞의 육조대로부터 황토현을 거친 뒤 광통교를 지나 숭례문에 이르렀다. 철물교 아래로 흐르는 물은 장통교(長通橋)로 지나갔다.

명칭 유래

철물교라는 이름은 다리 인근에 철물을 판매하는 가게인 철물전(鐵物廛)이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건국 초부터 왕의 행행을 위해 건설하였다. 왕이 경복궁에서 나와 흥인문을 통해 나가는 행행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다리인 데다, 창덕궁에서 경희궁이나 돈의문(敦義門)을 거치려는 경우에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다리였기 때문이다.

위치 비정

종로의 종루(鍾樓)를 지나 종묘에 도달하기 전에 있었다.

관련 기록

조선시대에는 역적을 처단한 다음에 역적의 머리를 철물교 거리에 내거는 제도가 있었다(『영조실록』 즉위년 12월 10일). 1728년(영조 4)에 영조가 무신란(戊申亂)을 진압한 뒤 반란군의 머리 11개를 깃대에 매달아 철물교에 걸어 두었는데, 다음해 4월까지 매달려 있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경도잡지(京都雜誌)』
  • 『여지도서(輿地圖書)』
  • 『한경지략(漢京識略)』
  • 『한양가(漢陽歌)』
  • 나각순, 『서울의 성곽』,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4.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의 하천』,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지명사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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