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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31 기준 최신판



일본 삼중현 동쪽 지역을 일컫던 옛 지명.

명칭 유래

국신(國神)인 이세진언(伊勢津彦)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내랑(奈郞)시대부터 명치(明治)시대 초기까지 일본의 지리 구분의 기본단위였던 국(國)으로, 동해도(東海道)에 있었던 15개국 중 하나이다. 일본 황실의 조상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을 모신 신사(神社)인 황대신궁(皇大神宮)을 세운 곳으로 646년 일본에서 조정 안의 혁신파가 벌인 대규모 정치 개혁인 대화개신(大化改新)을 계기로 하나의 국이 되었다. 이후 평씨(平氏)·북전씨(北畠氏)·직전씨(織田氏)의 지배를 거쳐 강호(江戶)시대에는 6개의 번(藩)으로 분할되었다.

조선초 조선 정부는 왜구(倭寇)에 대한 문제를 교린(交隣)의 차원에서 처리하였다. 특히 일본과의 교린 관계는 당시 일본의 실세였던 실정막부 정권에 한정된 것이 아닌 구주의 대내씨·소이전(小貳殿)·대마도주(對馬島主) 등을 대상으로 다원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정부는 그들에게 조공(朝貢)을 허락하여 경제적 대가를 주는 한편 왜구의 단절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1443년 초무관(招撫官)강권선(康勸善)이 왜구 문제로 일본 일기주(一歧州)에 사자로 파견되었다(『세조실록』 25년 7월 22일)(『세조실록』 25년 8월 2일). 이후 귀국하여 이세국 태수(太守) 원문(源聞) 등의 답서를 제출하였다. 원문은 이 답서에서 1442년에 발생한 왜구는 이세국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선조대부터 조선으로부터 은혜를 입어 왔다는 것과 앞으로 조선의 배가 왕래할 때에는 굳게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이 답서의 내용을 통하여 이세국은 조선으로부터 도서(圖書)를 하사받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세종실록』 26년 4월 30일). 1453년부터 1479년까지는 조선에 토산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단종실록』 1년 7월 5일)(『성종실록』 10년 12월 23일).

이세국은 1871년 명치(明治) 신정부에서 번을 폐지하고, 지방통치기관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부(府)와 현(縣)으로 일원화한 폐번치현(廢藩置縣)을 시행하면서 안농진현(安濃津縣)과 도회현(度會縣)이 되었다. 이후 1876년에 통합되어 삼중현이 되었다.

위치 비정

동쪽은 이세만(伊勢灣)에 접하고 있고, 서쪽은 영록산맥(鈴鹿山脈)·포인산맥(布引山脈)·대태산계(大台山系)를 사이에 두고 이하국(伊賀國: 현 삼중현 서부)·산성국(山城國: 현 경도부(京都府))·대화국(大和國: 현 내랑현(奈良縣))과 접하고, 남쪽은 지마국(志摩國: 현 삼중현 남부)에 접하고 있다. 북쪽은 목승천(木曾川)·읍비천(揖斐川)·장량천(長良川)을 경계로 미장국(尾張國: 현 애지현(愛知縣))·미농국(美濃國: 현 기부현(岐阜縣))과 서로 접하고 있다. 서쪽의 산지를 제외하고 대부분 평지이다.

참고문헌

  • 『日本大百科全書』, 小學館, 1987.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吉田茂樹, 『日本地名大事典』, 新人物往來社, 2004.
  • 三省堂編修所, 『日本地名事典』, 三省堂, 2007.
  • 平凡社地方資料センタ, 『日本歷史地名大系』, 平凡社, 1986.
  • 이계황, 「에도시대의 여행환경-이세참궁과 관련하여」 『동아시아 속의 역사여행』 Ⅰ, 산처럼,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