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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31 기준 최신판



조선후기 통신사의 경로 중 한 곳으로, 내랑시대부터 명치초기까지 존재했던 일본의 여러 국(國) 중 하나.

개설

일본의 고대~중세 간선도로 구분인 5기 7도(五畿七道) 중 동산도(東山道)에 속하였다. 『고사기』에는 ‘근담해(近淡海)’·‘담해(淡海)’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 지역의 중심에 있는 비파호(琵琶湖)를 ‘담해·담해내해(淡海乃海)·근강지해(近江之海)· 근강해(近江海)’라고 불렀는데, 이와 함께 기내(畿內)에서 가까운 지역이라는 의미로 근강이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701년 근강국이라는 표기가 등장한 이후 이름이 정착되었다.

일본의 중심지인 기내(畿內) 지역에 접해 있고 교통의 요지였기에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조선후기 통신사의 경로 중 하나였는데, 사행록에 비파호의 풍경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였다. 현재의 하자현(滋賀縣) 지역이다.

형성 및 변천

겸창(鎌倉)시대 근강의 수호(守護)는 좌좌목(佐々木)씨였다. 수호는 지방의 군사와 민정을 감독하는 직책이었다. 좌좌목 가문은 여러 가문으로 분가되었는데, 본가인 육각씨(六角氏)가 근강의 남쪽을, 또 한 일파인 경극씨(京極氏)가 북쪽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구도는 대체로 실정(室町)막부 말기까지 이어졌다.

조선과 관련해서는 태종대에 ‘대마도(對馬島) 근강수(近江守) 종무세(宗茂世)’의 사신이, 세종대에는 ‘태재부(太宰府) 종우마(宗右馬) 근강수무세(茂世)’가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태종실록』 16년 5월 1일)(『태종실록』 16년 12월 25일)(『세종실록』 12년 7월 1일). 여기서 등장하는 ‘근강수 무세’는 종무세와 동일 인물로 생각된다. 다만 그가 실제 근강 지역의 사람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이며, ‘근강수’라는 직명 역시 차용 내지 도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성종대에는 대내씨(大內氏)의 사신이 일본의 변란에 대한 정보를 전하였다. 일본의 수도인 경도(京都) 근처인 근강과 하내(河內) 지역에 도적이 발생하였는데, 대내씨 자신의 적자 신개(新介)를 출진시켜 근강의 적을 물리쳤다는 것이다(『성종실록』 24년 10월 20일). 이 변란은 막부에 반기를 든 당시 근강 수호 육각행고(六角行高)에 대한 공격[장향(長享)·연덕(延德)의 난]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대내씨의 당주는 대내정홍(大內政弘), 적자는 대내의흥(大內義興)이었다. 조선은 이러한 정보를 통하여 근강의 위치 등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국(戰國)시대에 접어들면서 직전신장(織田信長)은 육각씨를 쫓아낸 후, 1576년 이곳에 안토(安土)성을 짓고 거처를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의 경제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1582년 그가 사망한 후에는 곧 그의 부하였던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조카이자 양자인 풍신수차(豊臣秀次)와 여러 측근 장수들을 이 지역에 배치하였다. 여기에서 나오는 물산은 풍신정권의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시기 조선에서 포로로 일본에 끌려간 사람들이 조선에 알린 정보 중에도 근강이라는 지명이 등장하였다. 강항은 「적중봉소(賊中封疏」에서 일본의 여러 지역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전하였는데, 그중 근강에 대해서는 13개 군을 관할하는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지역이며 산과 들이 윤택하다고 하였다. 또 관원(關ヶ原) 전투의 정보를 전하면서 덕천가강(德川家康)과 대립하고 있는 석전삼성(石田三成)의 근거지가 근강에 있다고 하였다. 1601년 일본에서 탈출하여 조선에 귀환한 강사준과 여진덕 등도 관원 전투와 관련한 지역으로 근강을 언급하였다(『선조실록』 34년 4월 25일).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국교가 재개된 후,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였다. 통신사는 당시 강호(江戶)막부의 장군이 체재하던 강호(현 동경)까지 갔는데, 그 여정 중에 근강 지역을 반드시 통과하게 되어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통신사의 사행록에는 대부분 근강 지역과 비파호에 대한 감상, 사람이 많고 물산이 풍부한 환경에 대한 묘사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 『간양록(看羊錄)』
  • 『해행총재(海行摠載)』(일본사행록) 『속일본기(續日本紀)』
  • 『일본서기(日本書紀)』
  • 강재언, 『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 한길사, 2005.
  • 나카오 히로시 저, 유종현 역, 『조선통신사 이야기 한일 문화교류의 역사』, 한울, 2005.
  • 삼택영리 저, 손승철 역, 『근세 한일관계사 연구』, 이론과 실천, 1991.
  • 西ヶ谷恭弘編, 『守護·戰國大名事典』, 東京堂出版, 1998.
  • 吉田茂樹, 『日本地名大事典』, 新人物往來社, 2004.
  • 三省堂編修所, 『日本地名事典』, 三省堂,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