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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기적인 사절로, 중국 황제가 병이 들거나, 원지(遠地)를 순행(巡行)하거나, 황제가 친히 원정할 때에 문안하기 위하여 파견된 사절.

내용

조선은 명나라 제후국의 위치에서 명나라 조정에 부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내어 문안하였다. 국초에는 명 황제가 병이 들거나, 원지를 순행할 때라든지, 황제가 원정할 때에 흠문기거사(欽問起居使)가 파견되었다. 조선전기에 명나라에 파견된 흠문기거사는 태종대 6회, 세종대 2회 등인데, 이 시기에 파견된 흠문기거사는 대체로 공녀(貢女)의 인친(姻親)을 선발하여 보냈다.

조선후기 청나라에 흠문기거사가 파견된 경우는 주로 청나라 황제가 자기 선조의 분묘가 있던 성경(盛京), 즉 봉천(奉天)에 행행(行幸)하였을 때이다. 이곳은 조선과 가까운 곳이므로 문안하기 위해서 흠문기거사가 행재소로 파견되었다. 이 흠문기거사행 또는 문안사는 정사를 1품관으로 하는 일품행(一品行)으로 서장관만 두고 부사(副使)가 없는 단사(單使)였다.

용례

同判議政府事柳廷顯回自北京 啓曰 皇帝於三月二十七日 領兵百萬北征 皇子皇孫皆扈從東宮在南京 戶部尙書夏原吉留守北京 兼摠六部之事 北方諸國皆遣使 欽問起居(『태종실록』 14년 5월 23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통문관지(通文館志)』
  • 『만기요람(萬機要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김송희, 「조선초기 대명외교에 대한 연구-대명사신과 명 사신 영접관의 성격을 중심으로-」, 『사학연구』 55·56, 1998.
  • 박성주, 「조선초기 遣明 使節에 대한 一考察」, 『경주사학』 19, 경주사학회, 2000.
  • 박성주, 「高麗·朝鮮의 遣明使 硏究」,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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