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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58 기준 최신판



나무나 돌, 금속 등에 조각을 하거나 새기는 일을 하는 장인.

개설

새기는 재료와 관계없이 새기는 일을 하는 모든 장인을 각장(刻匠)이라고 부른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군기감(軍器監) 소속의 각장은 화살에 깃을 붙이는 역할을 하였다. 동일한 각장이라도 그들이 다루는 재료에 따라 새기는 기술이 다르기 때문에 일에 따라서 쓰이는 각장이 달랐다.

담당 직무

무기 등을 제작하는 각장은 주로 금속이나 목재에 조각하거나 새기는 일을 하였다. 조선초기 군기감에 소속된 각장은 화살 제작에 참여하여 목공(木工)이 만든 화살대에 깃을 붙이는 일을 하였다. 그 밖에 총통이나 조총 및 금속제 기물에 감독관과 색리(色吏), 제작 장인의 성명, 만든 날짜와 무게 등을 새기는 일도 하였다. 돌에 글씨를 새기는 석장이나 목판 등에 글씨를 새기는 각장과도 각각의 역할이 달랐다.

변천

각장에 관한 기록은 1434년(세종 16)에 군기감 소속의 장인으로 등장하는데 이때 인원을 증원하여 9명에서 1명을 더하여 10명이 되었다. 이들은 5일마다 교대로 입번하였는데 그 대가로 요가(料價)를 받았으며 매월 일정한 양의 화살대를 만들었다(『세종실록』 16년 6월 11일). 1460년(세조 6)에 군기감에 소속된 각장은 시복장(矢服匠)과 함께 각각 12명이 있었으며 4명씩 근무하였다. 이것은 세종 때보다 인원이 축소된 것으로 필요한 화살을 지방에서 제작하여 조달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각장은 주성장(鑄成匠) 등 다른 12종의 장역(匠役)과 함께 체아직으로 부급사(副給事) 한 자리가 지급되었다. 군기시 이외에도 각장은 공조(工曹)에 2명의 인원이 배정되었다(『세조실록』 6년 8월 1일).

『경국대전』이 완성된 시기인 1485년(성종 16)에는 조각장(彫刻匠)은 공조에 2명, 상의원에 4명, 선공감에 10명, 교서관에 8명 등 총 24명이 있었다. 이들 각장 가운데 상의원을 제외하고는 화살을 제작하지 않고 나무나 금속 제품에 새기는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조선후기까지 각종 도감에 등장하여 활동을 하였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경국대전(經國大典)』
  • 강만길, 「조선전기의 관장제와 사장」, 『조선시대상공업사연구』, 한길사, 1984.
  • 이혜옥, 「조선전기 수공업체제의 정비」, 『역사와 현실』 33,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