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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문원(承文院)에 소속되어 중국과 왕래하는 문서에 쓰는 특수 문체인 이문(吏文)을 배우던 관원.

내용

조선시대에는 각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강습시키기 위하여 각종 습독관(習讀官)을 선발하였다. 그 중 이문습독관(吏文習讀官)은 한어(漢語)와 이문 등 관련 서적들을 습독하는 것이 그 소임이었다. 1425년(세종 7)에 승문원에 이문습독관 20인을 두어 습독청(習讀廳)에서 학습하게 하였다. 습독관의 경우 그 전문성 때문에 습독관에서 물러나더라도 이들을 이습관(肄習官)으로 정하여 계속해서 그 분야를 전공하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문습독관으로서 다른 관직을 겸한 자는 부득이한 공적인 일 이외에는 승문원에 나와 학습하게 하였다. 1472년(성종 3)에는 이문습독관에게 매달 초하루에 사자(寫字)하게 하고 열흘마다 한 번씩 이문을 짓게 하였다.

용례

承文院提調議啓吏文習讀官勸課條件 一吏文依大典 一朔內三次出題製述 常仕提調每旬檢擧置簿 每節季都提調一會科次 分數及製述度數 各於名下具錄以啓 一至正條格大元通制吏文謄錄及凡干吏文 每日所讀限以十張以上 常仕提調逐日置簿 每節季都提調一會 一朔所讀揲出三處 所讀張數各於名下具錄以啓(『성종실록』 9년 11월 13일)

참고문헌

  • 박성주, 「高麗·朝鮮의 遣明使 硏究」,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8.
  • 朴成柱, 「朝鮮前期 對明 御前通事」, 『慶州史學』 제29집 , 경주사학회, 2009. 6.
  • 張舜順, 「朝鮮後期 通信使行의 製述官에 대한 一考察」, 전북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9.
  • 정다함, 「조선초기 습독관제도의 운영과 그 실태」, 『진단학보』 96, 진단학회, 2003. 12.
  • 정다함, 「朝鮮前期 兩班 雜學兼修官 硏究」,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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