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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52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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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경무관 |
한글표제 | 경무관 |
한자표제 | 警務官 |
상위어 | 경무사(警務使), 경무청(警務廳) |
하위어 | 서기관(書記官), 주사(主事) |
동의어 | 경시(警視) |
관련어 | 경무국(警務局), 경무서(警務署), 경시청(警視廳), 내무아문(內務衙門) |
분야 | 정치/행정/관직·관품 |
유형 | 직역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대한제국 |
왕대 | 고종, 순종 |
집필자 | 왕현종 |
관품 | 주임관(奏任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경무관(警務官) |
1894년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기까지 행정 경찰 사무와 사법 경찰 사무를 맡았던 경무청(警務廳)의 경찰 관직.
개설
1894년 7월 경무청이 신설되어 경무청 소속 경찰로서 경무관(警務官)이 설치되었다. 경무관은 각종 경찰 행정 업무와 사법 행정을 비롯하여 순찰, 행형(行刑), 소송 등 모든 경찰 사무를 맡았다. 1895년 4월 경무청 관제에서 경무관은 12명 이하로 규정되었고, 5월에는 23부 지방 관제 개정으로 각 부마다 1명씩이 배치되었다. 각 개항장에도 경무관이 배치되었다. 1901년 11월 궁내부에 경위원이 설치되면서 경무관이 배치되었다. 1907년 7월에는 경무청이 경시청으로 바뀌면서 경무관도 경시(警視)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담당 직무
1894년 7월 1일 군국기무처에서는 관제의 업무 분담과 시행 사항을 의정한 후에 경무국(警務局)을 내무아문(內務衙門)에 소속시킨다고 결정하였다.
1894년 7월 14일에는 경무청 관제와 직무를 반포하였다. 좌포청(左捕廳)과 우포청(右捕廳)을 합하여 경무청을 설치하고 내무아문에 소속시켰다. 경무청은 한성부 5부(五部) 관내의 경찰 사무 모두를 맡았다. 경무청에는 경무사(警務使) 1명, 부관(副管) 1명, 경무관·서기관(書記官)·총순(總巡)·순검(巡檢) 약간 명을 두었다. 총무국은 부관이 주관하고 경무관 몇 명이 보좌하는 것으로 하였다. 경무관과 총순은 판임관으로서, 경무사와 부관의 지휘를 받아 자신이 맡은 권한을 집행하였다.
1894년 8월 6일에는 각 항구(港口)의 경찰관을 경무관으로 고쳐 부르고 경무청에 소속시켰다. 승진과 강등 등의 사무는 경무청에서 내무대신(內務大臣)에게 신청하여 시행하도록 하였다. 또한 경무청 관원의 품계를 올려 경무부관은 경무부사(警務副使)로 고쳐 3품으로 올리며, 경무관은 주임관으로 올리고, 서기관은 판임주사로 고치게 하였다. 경무관은 영업, 시장, 회사, 교회당, 군중 소요, 유실문, 매장물, 전염병 예방과 소독, 검역 등의 위생 사무 등을 맡았으며, 죄인의 수색 체포, 기아와 미아의 수색 등 잡다한 경찰 사무를 맡았다.
1895년 4월 29일 칙령 85호로 경무청 관제가 새로 공포되었다. 경무청의 관리로 경무사는 1명, 경무관은 12명 이하, 주사는 8명 이하 등으로 규정되었다. 궁내 경찰서 외에 한성부 5부 구역 안에 5개의 경무서(警務署)를 두기로 하고 경무서장은 주임관 6등 경무관으로 채워 근무하게 하였다. 같은 해 5월 26일 칙령 101호로 지방 관제를 개정하여 한성부 외 전국 23부에 경무관 1명씩을 두도록 하였다. 경무관은 해당 부 관찰사의 지휘를 받아 관내의 경찰 사무를 맡아서 처리하였으며 경무관보와 총순 등을 감독하였다.
1896년 8월 7일에 각 개항장 감리 부설 관제가 개정되었다. 항구에 경무관을 두고, 경무관·총순·순검의 정원 수와 일체 비용은 내부에서 정하도록 하였다. 1899년 3월 18일에는 경무사 이하 본청과 각 항구의 경무관이 착용하는 예모(禮帽)와 예장(禮裝)을 반포하였다. 같은 해 5월 4일에는 확대된 개항장에 대한 감리서 설치에 따라 각 개항장의 시장 감리서 관제와 규칙을 개정하여 감리와 각항 경무관의 지휘 계통을 규정하였다.
변천
1900년 6월 12일, 칙령 20호로 경부 관제를 반포하였다. 경부에서는 한성부와 각 지방 개항장의 경찰 사무, 감옥서를 통할하고 경찰 관리를 감독하는 것으로 하여, 경무관 15명을 배치시켰다. 1901년 11월 17일 포달 77호로 궁내부 관제에서 경위원(警衛院)을 늘리면서 경무관 5명을 주임관으로 임명하도록 하였다. 1903년 12월 11일 포달 106호로 경무관 2명을 더 늘렸다. 1904년 2월 2일에는 포달 111호로 풍경궁(豐慶宮)에 경무관 1명을 더 늘려 배치하였다. 같은 해 2월 5일에는 다시 경위원에 경무관 1명을 늘려 배치하였다. 1905년 3월 4일 포달 126호 궁내부 관제 개정에서는 경위원에 소속된 경무관을 7명으로 하였다. 궁내부 산하 경위원은 황궁 수비, 각종 사찰(査察)과 정보 수집, 국법 위반자에 대한 수사와 체포 등의 업무를 담당하여 일종의 특수 경찰 기관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1906년 9월 24일 칙령 50호 지방관 관제 개정 시에는 관찰사 아래에 경무관 1명을 두되 관찰사의 명령을 받아 경찰 사무를 맡아 처리하게 하였다. 1907년 2월 20일 칙령 8호로 각 개항장 경무 관제를 폐지하였다. 1907년 7월 27일 칙령 1호로 경무청 관제를 개정하여 경무청을 경시청으로, 경무사를 경시총감으로, 경무관을 경시로 바꿨다. 이로써 경무관 제도가 일본식의 경찰 제도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 『속음청사(續陰晴史)』
- 『관보(官報)』
- 『일본외교문서(日本外交文書)』
- 국사편찬위원회, 『주한 일본공사관 기록』 1~40, 국사편찬위원회, 1986~1994.
- 송병기·박용옥·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 1~4, 국회도서관, 1970~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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