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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50 기준 최신판



왕이 직접 나가서 하던 사냥에서, 사냥감을 쏘아서 잡을 수 있도록 짐승 몰이를 한 몰이꾼 및 목장에서 말을 모는 데 동원된 몰이꾼.

내용

왕이 신하와 백성들을 모아 일정한 곳에서 함께 사냥하며 무예를 닦던 행사인 강무(講武)는 대개 봄·가을에 행해졌다. 강무가 시작되면 사냥감의 몰이를 위한 구군(驅軍)이 징발되었다. 구군은 산이나 들을 포위하여 짐승을 몰아가는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군인이 동원되기도 하지만 주로 주변 농민들이 징발되었다. 그 인원은 수천 명에 달하였다. 징발 기간에 필요한 식량을 스스로 준비해야 했고,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 일이 있을 만큼 힘든 노역이었다.

목장에서 말몰이[驅馬]를 하는 데 징발된 몰이꾼도 구군으로 불리었다. 1471년(성종 2) 민을 사역시키는 방법[役民式]을 호조에 하달하였을 때, 목장에서 말을 몰이하는 일[牧場驅馬]에 민을 동원할 때에는 경작지 8결당 1명씩 징발하도록 정한 바 있다. 18·19세기의 사정을 보여 주는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는 당시 요역의 종목 중 대표적인 것 12가지를 들었다. 말몰이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용례

駕至江原道界 觀察使趙遂良 經歷李蓄迎謁道左 上至釜拘里觀獵 遂命放京畿驅軍 又獵于稤倉平川邊 以所獲獐鹿薦于宗廟 次鐵原回山 (『세종실록』 24년 3월 5일)

참고문헌

  • 윤용출, 『조선후기의 요역제와 고용노동』,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 강제훈, 「15세기 京畿地域의 徭役制」,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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